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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공동기획}
삶과 예술, 문화 사이의 거리재기

최창희 _ 감성정책연구소  date. 2018.11.07

안녕, 서울X예술 ⑤ 생활예술&생활문화



[우주마가린]의 첫 번째 공동기획 ‘안녕, 서울X예술’은 서울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과 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대도시 서울의 삶과 문화, 예술에 대한 작은 목격담이자 우주마가린의 첫 항해일지이기도 하다.


연재순서

안녕, 서울X예술  ① 방담 _ 마음을 흔드는 도시, 삶을 헤아리는 예술은 가능한가  (2017.12월)

안녕, 서울X예술  ② <시티 컨퍼런스 : 예술과 도시> 리뷰 _ 급변하는 도시에서 예술의 역할, 도시와 예술의 관계 맺기  (2017.12월)

안녕, 서울X예술  ③ 마을과 문화, 예술 _ 성북동 삐딱 가족의 동네 예술 이야기  (2018.1월)

안녕, 서울X예술  ④  소설 / 회사원 OO씨의 일일 _ 모퉁이 가게, 정한25시  (2018.1월)

안녕, 서울X예술   ⑤ 생활예술&생활문화 _ 삶과 예술, 문화 사이의 거리재기  (2018.2월)

안녕, 서울X예술   ⑥ 예술인과 도시 _ 긍정 또 긍정의 마인드로, 예술 하기 좋은 도시를 향해  (2018.2월)


집요한 내 성격은 기어코 날짜까지 기억해내고 만다. 지난 해 11월 12일 문화비축기지에서 [우주마가린]의 원재료들은 두어 시간 동안 서울의 삶과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 소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후속 연재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11월 19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2시간이 넘게 회의를 하고도 부족해 종로의 한 카페로 이동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 토론의 결과 [우주마가린]이라서 가능한 방법으로 서울의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하자고! 바로 자신의 이야기, 내 친구, 옆 사람 이야기를 하자고 의기투합하였다. 자신이 없었지만 알겠노라고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나의 페이스북 친구이자 동네 친구가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생활예술, 생활문화에 대해서 ‘정책수다모임’을 개최한다고 하니 난 그곳에 가서 이야기를 듣고 오겠노라고. 그래서 갑자기 추워진 12월 1일,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주최의 <생활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 금요문화정책수다모임(이하 수다모임)에 다소곳하게 “저도 가도 될까요?” 하고는 참석하였다.


당시(뿐이겠냐 만은) 생활문화에 대한 주제는 정책토론회 등에서 계속 소란스럽게 논의되고 있었다. 그 논의가 궁금하기도 하고 다소 나의 주요 관심 주제(공동체와 예술)와 연관되기도 해서 마음이 동하기도 하였다. 특히 대규모 토론회가 아닌 수다모임이라지 않는가? 수다모임의 느낌도 좋고 왠지 우리의 첫 공동기획 방향과 그나마 성격이 유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날 수다모임은 부천문화재단 김기석 정책기획팀장의 발표로 시작되었다. 몇몇의 사례 사진에 대한 가벼운 설명과 함께 생활문화에 대한 정체성 관련 의문점 제기를 시작으로 ‘생활문화 활동 참여자 100인 토론회’와 ‘관계자 청책포럼’의 주요 내용을 소개해주었다. 가벼운 발표를 부탁했다는데 상당히 정책적 차원에서의 논의에서부터 현장의 고민들을 담은 발표였다. 또한,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주민자치와 생활자치로서 예술문화 활동을 이해해야 하며, 나아가 실제적인 지방자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한계들을 지적하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 다시 해석해보자니 ‘지방정부의 자율성’ 또는 ‘자기 결정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앙 정부의 생활문화 지원정책과 육성방안이 지역의 환경이 고려되지 않은 채 실행되는 구조적 한계 등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이 문제의 해결방안 역시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 본래의 생활문화 정책의 취지에서 가능함을 주장하는 듯했다. 즉 생활문화 활성화를 통해서 시민문화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구성과 주민자치의 구현으로서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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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수다모임 발표 자료 일부(부천문화재단 김기석 정책기획팀장)



그런데 이 생활문화는 무얼까? 생활예술이라고도 하고 생활문화라고도 하는데(이하 생활예술로 통일), 왜 예술이나 문화에 ‘생활’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이나 문화가 ‘생활’이 배제되어 존재할 수 없는데 말이다. 국내에서는 논의되고 있는 생활예술 개념은 엘리트 예술이나 제도권 예술과는 달리 “(1) 일상생활 속에서 (2) 일반인들에 의해서 (3) 자발적으로 향유되는 예술활동으로 정의”한다1). 밴드, 오케스트라, 생활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동아리 활동과 활동 공간 지원 및 매개자 육성 등의 형태로 정책이 실행되고 있는데, 세부적인 정책토론이나 현장의 분위기는 본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의문시되고 있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날의 수다모임도 결국 이러한 차원에서 여러 가지 쟁점이 자유롭게 토론되었다. 생활예술 지원 당위성의 문제에서부터 이름과 외양만 달리한 채 유사한 사업이 실행되는 것은 아닌지 등의 다양한 문제점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생활예술 사업들이 본질적인 의미에서 얼마나 거리감이 있는지, 또한 ‘왜’ 생활예술이 정책적으로 지원되고 육성하게 되었는지의 근본적 문제가 가장 큰 화두가 아니었나 싶다. 수다모임에 참석하여 최근의 논의를 듣겠다는 나는 본래의 목표를 잊은 채 어느새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본래 글의 목표와 성격 모두 방향을 잃었다. 옆 친구를 통해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서울의 생활과 예술을 ‘생활문화’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였으나 역시 나에겐 어려운 숙제였다. 자유로운 수다모임이기는 하였지만 엄청나게 진지하게 토론을 나누었고, 너무나 숙연하게 한국사회에서 예술과 사회를 고민해야 했던 것도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신나고 재미나게 경험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은 역시 내게는 부족한 듯하다. 여하간 마음이 무거운 것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예술과 문화가 거리가 있었기에 정책을 통해서 지원하고 육성하려하는가 이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국가나 제도가 국민을 수동적 주체로 설정하고 있으면서도, 정책적으로 또 그 주체를 능동적으로 하겠다는 발상이 기이한 일이기도 하다. 시민 스스로 주체로 형성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수동적 방법으로 능동적 주체의 형성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더욱이 OECD 국가 중 국민행복지수는 하위권이고, 연간 노동시간은 1~2위를 차지하는 한국에서 과연 진정한 생활예술이 가능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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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아트로드’ 어플리케이션


생활예술이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과 또한 그것을 육성하려는 정책의 방향 등이 혼란스러워 보여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한 마음에 그래도 내가 사는 동네 생활예술 활동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니 ‘은평아트로드’라는 어플리케이션과 함께 다양한 공간과 동아리, 행사 등을 발견하였다. 특히 우리 동네 동아리를 찾아보니 ‘물푸레 북카페’의 공예 동아리 <다뜨자>, ‘마을예술창작소 별별곳간’의 <그림자원정대> 등 흥미로운 활동들에 어두웠던 얼굴표정은 이내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첫 번째 숙제의 미진함을 스스로 ‘능동적’으로 숙제를 내보도록 하자! 다음은 내가 사는 곳 생활예술 동아리들을 찾아가 봐야겠다.




1) 정종은, “국내 생활예술의 현황과 전망”, 『전국생활예술네트워크 포럼』, 1쪽. 보다 자세히 설명해보면 영국의 자발적 예술(voluntary arts)’, ‘아마추어 예술(amateur arts)’의 개념, 미국의 ‘비공식 예술(informal Arts)’, ‘참여 예술(Participatory Arts)’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아마추어 동호회 활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70% 이상의 영국인들이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에 참여하였는데 이를 자발적 예술(Voluntary Arts)이라 명명하였다. 이러한 자발적 예술 활동은 지역사회의 결속뿐 아니라 전문예술가들의 고용효과도 발생되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2004년 참여정부의 ‘새 예술정책’으로 언급되는 『예술의 힘-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문화체육관광부, 2004)의 4가지 정책 목표 중 하나로서  ‘향유자 중심의 예술활동 강화’가 제시된 것을 생활예술의 정책적 변화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나 초기에는 시민들의 문화향유 또는 문화소비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2009년도 ‘생활 속의 예술’이라는 정책방향 속의 “생활 속의 예술 확대”로서 “아마추어 동호인 문화나눔 활동 지원” 등의 세부 정책과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같은 책, 8-10쪽



※ 이 기사는 서울연구원 ‘2017 작은연구 좋은서울 지원사업’ 연구모임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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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 _ 감성정책연구소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를 운영. 그러나 박사논문 작성 핑계로 모든게 엉망진창이다. 빨간씨는 대학 시절 혁명을 꿈꾸며 사용했던 필명 주해(朱海)에서 파생된 닉네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서 예술적 방법을 탐구하며, 돈보다 멋진 것을 추구하고 싶은 낭만적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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