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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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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사물의 시선}
따뜻함이 묻어나는 찰나의 기록들이 잔잔히 스며드는 순간

신지혜 _ 무가(쪽)지 [낙엽] 발행인  date. 2018.11.07

두 번째 인터뷰이, ‘더뮤지컬’ 기자 박보라 



스물넷에서 스물다섯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봄과 같은 에너지로 사무실 문을 열며 인사를 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보라를 만나는 매일, 매일이 반가웠고 위안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이따금씩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면, 그걸 또 언제 봐서는 “언니 억지로라도 많이 웃어.”라고 했다. 우울한 인상이 드리워져 그게 내 얼굴이 되어버리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고 없을 거라고 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의 매서운 충고 덕분에, 어쩌면 그 시절을 버티어내고 견디어내서 지금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1. 

만날 때마다 회자되는 ‘그때의 그 사람들’이 있다. 외설적인 말과 행동을 장난이라 치부하며 짓궂음의 범주를 넘어선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했던 어른들. 힘겹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장난이 조금 지나치구나-라고 대답해주던 선배들에겐 더 이상의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려웠고, 그 상황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들어준 사람은 보라뿐이었다. 세간에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 운동을 보면서 우리는 ‘그때의 그 사람들’을 또다시 이야기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매체 속에서 그 사람들은 자신이 겪게 된 상황을, 눈물 뚝뚝 흘리며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들의 용기에 대해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저만큼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그들로 인해 내가 겪은 상황을 이기적으로 위안 삼았다.


보라는 내게, 만약 그 상황을 지금 다시 겪게 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얼굴에 물벼락을 뿌린 후, 욕을 한 바가지 하고 나서 퇴사할거야.” 있는 대로 센 척을 하며 대답을 하고는 스스로가 대견함을 느끼고 있을 찰나, 너무나 부끄럽고, 억울하고, 슬픈 감정이 치밀었다. 나는 하나 잘못한 게 없는데 그 상황을 또다시 맞닥뜨리게 된다면 나는 또 퇴사를 하겠다고 말하겠구나. 잠깐 우울했지만, 지금이 간혹 힘들거나 괴롭더라도, 그때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힘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너스레를 떨고는 금세, 요새의 관심사 공연과 배우들, 그리고 취미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어차피 변하는 건 없을 거니깐(미투하는 세상도, 그리고 나도)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잃지 말고 주어진 위치와 상황에서 즐겁게 일하고 적당히 누리며 살다가 때가 되면 죽자고.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항상 그랬듯, 씁쓸한 뒷맛을 웃음으로 훌훌-털었다.


2. 

뮤지컬 배우의 인터뷰를 앞두고 있다며, 내가 제안한 인터뷰도 진행할 겸, 얼굴도 볼 겸, 일도 할 겸, 그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을 같이 보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 발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무대 위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뷰파인더를 통해 넘나들 때만큼은 얼마나 차분하고 냉정한지, 프로다운 면모로 관찰하고 셔터를 누르기 바쁜 모습은 무언가 생소하고, 어색했지만 이상하게 또 멋있고 귀여웠다. 

공연이 끝난 후, 근처 카페에서 집약적으로 여러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무거운 건 가볍게, 가벼운 건 무겁게 흘러가듯 이야기하다, 카메라와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의 두 눈이 반짝한다. 조심스레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수줍어도 하다가, 그때의 감정들에 대해 신이 나서 목소리가 성층권에 닿았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열정을 쏟아내며 일을 해오고 있는 그녀가 내심 부럽기도, 내 친구여서 뿌듯하기도 했다. 


벌써 몇 년째, 주말도 없이 쉬지 않고 공연을 보러 다니고, 집에서는 하루 종일 공연영상을 틀어놓고 공부하고, 끊임없이 배우를 탐구하며 기사를 써내는 그녀를 볼 때엔 아직 어리기에 그 정도 열정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써 내려간 글들을 찬찬히 읽어봤다. 성숙한 글의 분위기에 언니로서 감동(?)했고 아가처럼 대했던 아까의 행동을 반성했다. 글은 네가 한참 윗길 언닌데 내가 뭐 한다고 그렇게 언니 행세를 했는지.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던 걸 뒤늦게서야 확인했다.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사진 속 내 모습, 따뜻함이 묻어나는 찰나의 기록들이 잔잔히 스며드는 순간, 이 친구가 얼마나 나를 애정하는지 눈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반가웠던 하루와, 고마운 기록들 – 여운이 되어, 덕분에 월요일을 앞둔 저녁을 우울함이 아닌, 포근한 기분으로 잠들 수 있었다. 




사물의 시선 두 번째 인터뷰이 | 박보라

뮤지컬 전문 월간지 ‘더뮤지컬’에서 기자로 일하며 밥값을 벌고 있습니다.

포트폴리오 : http://raya1202.creatorlink.net

개인 인스타계정 : @raya1202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종잡을 수 없는 취향과 널뛰는 감정의 소유자, 공연을 좋아하다가 우연히 기자가 되었고, 몇 매체를 거쳐 지금은 뮤지컬 전문 월간지 '더뮤지컬'에서 밥값을 벌고 있습니다.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동시에 요즘에 공연 사진을 찍으면서 혼자 좋아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어요. 


애착을 가지는 이유,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대하는지요!


아마 카메라에 마음을 뺏긴 계기는, 지금은 돌아가신 아빠의 카메라를 처음 찍어보았을 때. 가족끼리 거창한 여행도 아니고 지방의 예쁜 서원을 들렀는데, 그때 아빠와 엄마를 찍어드렸어요. '찰칵'거리는 소리가 좋았던 것 같아요.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두 사람을 바라본 시선. 그날의 햇살, 분위기, 바람, 온도 그리고 따스함. 이런 것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점차 카메라의 기종도 업그레이드됐죠.


사진이 가지고 있는 온도가 있어요. 뷰파인더나 결과물을 보면서 느끼는 온도도 있지만, 그 상황의 온도라고 해야 하나. 순간의 온도가 있는데, 사진을 찍을 때마다 사진 자체가 내 기억이기 때문에 내가 보는 온도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런 상황과 순간의 온도를 쉽게 떨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다 보면, 내 감정이 어렴풋이 기억나고, 이 과정이 정말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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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사진 : 제가 일을 하고 있던 노트북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햇살이 아이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고 지켜보고 있는 그 순간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라 씨를 만나고 난 후에는 언제나, 그날의 사진들을 보내줬었어요. ‘표현은 무뚝뚝할지라도, 마음은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를 사진을 전달받을 때마다 느껴요.(웃음) 어쩌면 카메라는 당신의 마음을 담는, 고마운 도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기억력이 좋지 않아요.(웃음) 신기하게도 사진을 찍으면 그날의 기억이 살아나는 편이니까, 카메라에 순간을 담으려고 습관처럼 찍어요. '애정을 담는 것', 글을 쓰면서도 느끼는 생각인데 글과 사진은 어떤 사람의 모든 걸 다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는데 단편의 어떤 면만 보고 판단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어떤 사람의 일부만을 보여줘야 한다면 기왕이면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 사진의 모든 중심은 '애정'이며, 흔히 말하는 '애정 렌즈'가 심각하게 작용하는데 특히나 공연 사진은 우연히 얻어걸리는 선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장면을, 어떤 배우를 잘 담고 싶다는 욕심이 가끔은 독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애정 렌즈'의 활약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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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중 눈보라 : 작품에서 주인공 안나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역으로, 

눈이 내리는 배경으로 사랑에 흠뻑 빠진 그녀의 위태로운 눈빛을 잘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애정의 순간이 영원히 간직되길 바란다’는 소개 문구가 당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확신으로도 느껴져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 몇 장을 꼽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글의 중간, 중간에 삽입하였습니다.)


-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중 눈보라 : 작품에서 주인공 안나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역으로, 눈이 내리는 배경으로 사랑에 흠뻑 빠진 그녀의 위태로운 눈빛을 잘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 뮤지컬 '레베카' 중 아메리칸 우먼 : 밝고 유쾌한 장면이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넘버인데, 그 순간의 흥겨움이 느껴지는 사진이죠.

- 지마켓 에일리 : 가수 본연의 모습, 그냥 말 그대로 가.수.

- 조카의 사진 : 내가 일을 하고 있던 노트북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햇살이 아이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고 지켜보고 있는 그 순간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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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마켓 에일리 : 가수 본연의 모습, 그냥 말 그대로 가.수.


혼자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데, 언젠가 사진첩을 발간하고 싶다거나 하는 계획은 따로 없으신지요. 


종종 공연을 보다가 '아, 이 장면 정말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장면이 프레스콜에서 시연하거나 촬영이 가능한 커튼콜에서 진행된다면 참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죠.(웃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울 때가 많지만 사실 정말 하고 싶은 건, 좋아하는 작품의 오피셜 포토를 맡는 건데 실현이 희박하겠죠. 아마 이직을 하지 않고 지금의 회사에서 계속 재직 중이라면 지금처럼 공연 사진을 계속 찍을 것 같아요. 혹시 좋은 기회가 된다면 정식 사진집이 아닌 엽서나 온라인 웹진 형태로 내가 찍은 공연 사진을 선보이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모든 건 타이밍이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소박하게 현재 개인 사이트를 통해 조금씩 업로드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내 사진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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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베카' 중 아메리칸 우먼 : 밝고 유쾌한 장면이라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넘버인데, 그 순간의 흥겨움이 느껴지는 사진이죠.


얼마 전엔 아빠의 필름 카메라를 수리 맡겼어요. 사실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고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내심 걱정했는데, 수리하시는 분이 "이 좋은 카메라를 고쳐서 쓰셔야죠"라고 하시더라고요. 수리를 맡기고 설레는 마음에 필름을 사러 사진관을 들렀는데, 사진관 사장님이 "자주자주 찍어요. 그래야 오래 쓸 수 있어요"라고 하시는 거죠. 갑자기 그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오래오래 지켜보고 자주자주 바라보는 것. 그게 내 진짜 눈이든, 카메라를 통해서든 많이많이 하고 싶어요. 


사진제공 _ 박보라

 프로필이미지

신지혜 _ 무가(쪽)지 [낙엽] 발행인

호기심이 많아, 무언가를 수집하며 알아가는 것에 큰 흥미를 느낍니다. 두서없이 생각하고 풀어나가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을 특히 좋아합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여전히) 하고 있고, 아직도 그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좋은 어른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