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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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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중간정산}
오늘도, 가방을 들고,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다

남은정 _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date. 2018.11.07

연출가 김민정



김민정 연출가를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독립예술제에서였다. 당시 나는 어리바리한 막내급 축제 스태프였고, 그녀는 ‘독립만세’라는 무용 팀으로 공연을 했었다. 내가 제일 처음 만났던 예술가(!)였고, 그 후 20년간 지극한 팬심으로 김민정 연출의 작품을 관람했다. 게다가 2001년 별오름극장에 오른 <불후의 명작>에서는 막간에 ‘엿 파는 마녀’로 등장해보는 영광도 누렸다. 무용으로 시작해서 6㎜ 단편영화도 만들고, 전시도 하고, 다원, 연극으로 영역(?)을 넓히는(바꾸는) 과정도 지켜봤다. 그 속에는 우리 역사와 삶, 시대가 녹아있었고, 최근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면서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 초 그녀가 캐나다로 떠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많이 놀랐고 왠지 모르게 섭섭했다.


사실 이 인터뷰는 2017년 7월, 그녀가 떠나기 몇 주 전에 진행했다. 멀리 떠나서 못 만나게 되기 전에 깊고 진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뷰를 청했다. 그렇지만 인터뷰를 하더라도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그냥 내 컴퓨터에만 저장하게 되더라도 꼭 한번 진지하게 얼굴 맞대고 얘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그녀는 떠났고, 그 사이 나는 뜻 맞는 친구들과 [우주마가린]을 준비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이어온 예술 활동에 변곡점이 예상되는 사람들을 만나는 코너 ‘중간정산’을 연재하기로 했다. 김민정 연출가와의 인터뷰를 공개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 것이다.


세 번의 만남과 7시간 분량의 녹음파일로 남은 인터뷰에선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영감을 받았던 수많은 영화와 감독들, 지금 읽고 있는 책들, 작품하면서 생긴 빚을 청산하느라 고생했던 얘기, 세월호, 블랙리스트와 검열까지. 그중에 아주 일부만을 꺼내서 [우주마가린]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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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_ 공연 연출가

주요작품 : <광장, 꽃 피다>(2017) <불행>(2015, 2016) <벗어난 원리들 ver.2-우는 사람들>(2015) <그날, 당신도 말할 수 있나요?>(2015) <안산순례길>(2015, 2016, 2017) <벗어난 원리들>(2014) <극장집회>(2014) <소외>(2013) <인생>(2012, 2013) <기억의 몽타쥬-오래된 이별>(2011) <떠나는 사람들>(2008, 2009, 2010) 외




한국을 떠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놀랐다. 그런데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 속 사람들도 늘 어디론가 떠나는 것 같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내 작업에는 사람들이 항상 떠난다. 심지어 작품 제목 중에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타고난 성향이 안정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호기심이 많은 거지. 노마드는 정확히 맞다. 그런데 뭔가 잘 차려 입고 보따리나 가방을 들어야 돼. 일단 가방을 들고 있으면 멋있잖나. (웃음)


다른 작업도 다 좋았지만 <소외>(2013)가 엄청 기억에 남는다. 무대 위에 백 명의 배우 모습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겐 모든 작업이 다 기억에 남지만, <소외>의 경우는 배우들의 힘이다. 서울연극제 연출가 인큐베이팅 파이널에 선정되어 2년 연속 초청을 받으며 <소외>를 구상했다. 공공의 기금으로 공연하는 만큼, 나 혼자 또는 우리만 이 기회와 프로필을 가지는 것보다는 다수와 나누고 싶었다. 원래 절반 정도는 시민 참여를 생각했는데, 3일 만에 배우 백 명이 다 찼다. 배우들이 자기 친구 배우를 데려왔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나서 작업 기회가 없는 청년 배우들이 많았다. 놀랍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다른 작품에선 다만 오만 원이라도 차비로 나눠 가졌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배우들한테 돈을 못 줬다. 단돈 얼마씩이라도 나눠 갖는 게 자존감의 상징이라고 배웠는데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때 오백만 원을 빚졌기 때문에 더 빚을 질 수는 없었다. <소외>는 빚을 져서 기억에 남는다. (웃음)


작품 할 때마다 빚진 거 아닌가?


아니다. 예전에 작업하며 쌓인 빚이 어마어마했다. 그걸 청산하느라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2010년 이후로는 빚이 너무 무섭고 빚지지 않았다. <소외> 때는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연습할 때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다 같이 모이긴 어렵고 보통 50명 정도가 함께 연습했다. 연습실 찾으러 다니느라 고생했고, 연습을 오래 할 수도 없었다. 은평구 소방서 강당이나 동사무소 강당 같은 곳을 빌렸는데, 대사 중에 “민주주의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놈의 독재자…” 이런 시를 강한 어조로 낭독하는 부분이 있거든. 갑자기 어떤 사람이 얼굴 시뻘게져서 지금 뭐 하시는 거냐며 뛰어 들어온 일도 있었다. 공연 때는 대기실에 자리가 없으니까 복도나 2층 로비에 서 있었다. 너무 감동적이었지. 배우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


<소외> 이전과 이후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백 명의 배우들과의 만남, 현실과의 만남, 다 기억에 남지. 그때가 2013년이잖나. 그때도 이미 너무 부당하고 부대끼는 일이 많았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가던 때였고, 내가 그것을 외면한 것 같아 괴로웠다. 이런 얘기를 공연장에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관객은 둘째 치고 백 명의 배우에게 그것을 알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오히려 서로 학습이 된 거다. 몇 년 만에 집회에도 나가보고, 검문에서 흰 국화를 숨기고 “저희 공연하러 가야 되요” 하면서 빠져나오기도 하면서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걸 메타 학습이라고 해야 하나?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던 거지. 어떻게 보면 <불후의 명작>(2001, 2004)의 선언문 버전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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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2013) / 사진 ⓒ김명집(왼쪽) ⓒ최홍준(오른쪽)


초창기 작업은 완성도 보다는 작업을 같이 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나 같은 일반인이 <불후의 명작>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웃음)


나는 지금껏 완성도에 가치를 둔 적이 없다. 완성도가 있다면, 나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내공이 쌓여서 실력이 높아지고 주변 환경이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뿐이다. 완성도를 위해 작업해 본 적은 없다. 나도 남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고 작업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지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작업하는 건 아니다. 1~2회 하면 끝날 공연인데, 같이 하는 이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내가 춤을 췄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카데믹하게 연극을 배운 사람은 기본적인 문법에 어긋나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은 다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가 바뀌었고.


2015년 베세토연극제에서 초연한 <불행>도 기억에 남는다. 남산예술극장에 최적화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은 너무 재밌는 작업이었다. 몇 년 전부터 극장, 주인공, 주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연극과 달리 분산된 포커스, 모두가 주인공인 배우, 캐릭터가 없는 연기 같은 것들 말이다. 남산예술극장이 입체적인 공간이라서 나오게 된 것이기도 하다. 마당극이나 탈춤을 떠올렸다고 하면서 내가 춤을 췄기 때문이 아닌가 묻는 분도 있었다. 그것도 맞다. 마당극은 보는 자 위주이지 하는 자 위주가 아니다. 보는 자들이 주체가 되는, 권력을 최대한 분산시키는, 말하자면 민주주의와 평등이다. 연출인 나조차도 권력을 놓고 최대한 컨트롤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화자찬 같지만 너무 멋졌다. 어느 시점에서 내가 이미지로 시뮬레이션 했던 장면이 실제로 벌어지는데 전율이 왔다. 아주 느리게 가더니 막 섞여서 난장판이 되었다가 이쪽에서 난리가 나더니 정지되었다가… 그런 흐름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 순간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만드는 과정은 아주 지루하고 힘들었다. 그동안 해보지 않은 작업이라 배우들이 두려워했는데, 나중에 되는 것을 보고 안심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했구나 싶다. 다시 시도해 봐도 좋겠지만, 다른 깃발을 꽂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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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2016) / 사진 ⓒ이강물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무용에서 시작해서 연극, 다원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그러한 시도에서 비롯된 것인가?


처음 무용 작품을 할 때 설명적이고 나레이션도 있는 연극처럼 만들었다. 그 당시에 댄스시어터가 유행이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왜 움직이는지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시놉시스를 만들고 있더라. 시작이 그렇게 되었고 그 방식으로 계속 발전시킨 거다. 예전엔 내가 안무가보다는 연출가가 더 맞나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달라졌다. 나중에 깨달은 건, 춤의 본질인 신체성, 운동성을 배제하고 그걸 수단으로 썼다고 할까? <불후의 명작> 같은 것은 무용이라고 말할 수가 없지 않나. 연극적인 드라마, 에피소드식 나열, 텍스트에 의존하는 작품이 맞다. 테크닉을 가미한 신체성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벗어난 원리들> <불행>은 오히려 안무라는 생각을 한다.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거지.


무용계에서 내 작품이 연극에 가깝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그러면 왜 안 되나 싶었다. 형식 실험을 계속 한 거다. 시네마 댄스 플레이, 유랑 퍼포먼스 가무 쇼, 플레이 댄스 그룹, 퍼포뮤직… 이건 무용도 아니고 연극도 아니니까, 새로운 걸 한 번 시도해 본 거라고 밑밥을 깔거나 변명의 여지를 만드는 거다. 매번 똑같은 공연은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신화 이후로 이 세상의 이야기, 권선징악, 사필귀정, 온갖 이야기는 다 똑같다. 어느 그릇에 담느냐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형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형식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좀 보수적인데, 그런 면에서 나는 보수적이다.


보수적이라기보다는 개척자 같다.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땅을 찾아 탐험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작품을 하면서 개척자가 되고 싶고 영향을 끼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해서 우월감이 되면 굉장히 위험하다. 그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니까 좀 자유로워지자’ 하는 의미로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동료로서 공유하고 싶다. 좀 다른 작업을 할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더 다양한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거든. 뭔가 새로운 걸, 안 가본 걸 찾아 가고 싶다. 개척자로서의 품성이나 갖춰야할 덕목을 찾아야겠지. 나는 예술의 본질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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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일 질문하고 싶었던 것은 촛불집회를 지나 조기 대선을 치른 지금 상황과 김민정 연출이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다. 이 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나라 근현대사, 시민의 권리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을 봤기 때문에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같다.


세월호 이후로 우리 모두가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국가의 개념을 하나로 정의내리긴 어렵겠지만, 지금으로선 합법적인 폭력집단이자 착취집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가 없어져야 한다기보다는 그런 폭력성이나 착취가 없어져야겠지. 내가 저항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염치를 가지고 살려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다. 내 작업 속에서 내가 애국자나 민족주의자처럼 보인다면, 그건 국가를 사랑해서라기 보단 그 안에 행위, 행동,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이런 것이 다 없어졌다. 우리 삶이 다 바뀐 거다. 승자독식 하는 세상이 된 거고. 이런 상황이 나를 떠밀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구나 어떤 면에서 정착하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떠나려고 하는 두 가지 본성이 다 있지 않나? 떠났을 때도 또 자기 구역을 만들어서 정착하고. 나는 그런 모순이 되게 많다. 그래서 양쪽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굉장히 바쁘다. 그동안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 시간이 생기니까 공부를 조금 더 깊이 있게 하고 싶다. 


왜 가는지에 대해 여러 얘기를 했지만… 그동안 내가 고여 있었다. 우리 팀(무브먼트 당당)도 나 때문에 고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움직이면 자극이 되면서 서로 다른 변화를 맞이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팀에도 다르게 살아보자는 얘기를 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후배들을 위해서 지금 뭘 해주지는 못해도 다른 모습,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잖나. 그 정도는 하면서 나이 들고 싶다.


2017년 국경을 넘은 후에 시작될 새로운 이야기는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나도 내 다음 작업이 너무 궁금하다. 몬트리올에 가서 다시 춤을 추거나 무대 위에 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외국어 공부하면서 많은 게 달라질 거란 생각에 기대된다. 한국말이나 한국에 대한 정리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가서 보면 더 잘 보이는 것이 있지 않겠나. 그러다가 진짜 애국자가 될 수도 있다. (웃음)

 프로필이미지

남은정 _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1997년 축제 스태프로 예술계에 발을 디딘 후 20년째 두리번거리고 있다. 사람과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그중에서도 제일 이해하고 싶은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정성스럽게 일하고 재미지게 노는 새콤달콤한 삶을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