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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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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중간정산}
외롭지만 정답게, 서툴지만 반갑게, ‘안녕, 언니’

남은정 _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date. 2018.11.07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



언니들은 뭔가 달랐다. 내가 처음 만난 레즈비언 커플이자 채식주의자였으며,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나에게 비폭력 대화를 권해주었다. 이상하고 낯설지만 위험하거나 날카롭게 느껴지진 않았다. 삶이 각박해서 자주 만나진 못해도 가끔씩 소식을 전할 때면 늘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30대 초반에 언니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정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집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중간정산]의 두 번째 손님이 되어주길 바랐다. 정말 오랜만에 뜬금없이 인터뷰를 청했지만, 흔쾌히 들어주었다. 이번에도 웃기고 이상하고 놀라운 얘기를 들려주었다. 출생신고가 남자로 되어 있었는데 뒤늦게 성별 정정신청을 하여 법적인 여자가 되었다는 얘기,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에 나타난 젠더 분석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단 얘기, 최근 음악감상회를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얘기... 세 번의 만남과 그칠 줄 모르는 수다 속에 나온 이야기를 다 담진 못했다. 다만, ‘나와 소녀들과 할머니들에게’ 이어지는 끝없는 자매애와 연대의식은 글 속에 남아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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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 _ 페미니스트 가수

1997년부터 페미니스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6월 1집 《逅: 만나다》를 냈고, 2011년 홍대 앞 '두리반' 칼국수 음악회를 기점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컴필레이션 음반 《이야기해 주세요》(2012)에 '나와 소녀들과 할머니들에게', 동성결혼식을 다룬 정소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퍼스트 댄스>(2014)에 엔딩곡 '어디에나, 그대'를 쓰고, 노래했다. 최근 장윤주 감독의 단편영화 <모모>(2016)에 음악감독으로 작업한 바 있다. 2집 《나의 정원으로》와 함께 전국을 돌며 음감회를 진행 중이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이번 음반 《나의 정원으로》는 조금 포근하게 들렸다. 뭔가 환대받는 느낌이랄까?


고맙다. 그런 노래를 하고 싶어진 거다. 1집에서는 막 화내고 신경질 내고 누군가의 분노에 공감했다면, 두 번째 음반은 좀 더 사람들이랑 만나고 소통하면서 어루만지고 치유하고 토닥여주고 안아주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다.


1997년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페미니스트 가수라고 이름 붙였다. 그때 반응은 어땠나?


그때도 페미니스트 성향의 가수들은 있었지만, 자신을 그렇게 명명하고 무대에 선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전에 페미니스트 성향의 가수들은 노동운동이나 민중운동, 민주화운동 정체성이 더 강했다.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달라진 거다. 나는 90년대 학번 X세대니까. 페미니즘을 얘기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내가 등장했고 반응이 좋았다.


1집 《逅: 만나다》 이후 15년 만에 나온 음반이다.


첫 번째 음반 작업이 너무 힘들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데뷔했으니까 음반을 내야 한다고 몰아간 면도 있었던 것 같고 협업이 익숙하지 않아서 서툴고 상처도 받았다. 2005년쯤부터는 노래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축제나 공연기획을 열심히 했다. 게이 인권운동 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G_Voice)에서 객원 단원으로 공연하는 등 딴 데서 기웃거리면서 노래했다. 그러다 송은지(소규모아카시아밴드)에게 컴필레이션 음반을 구상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일련의 여성 뮤지션 그룹을 만나면서 기운을 얻었다. 느슨하고 기분 좋게 작업을 하면서 1집을 만들 때 가졌던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래서 2집 음반을 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은 다른 장르에 비해 개인적인 작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협업이나 동료와의 합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좀 그런 편인 것 같다. 완전히 혼자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편곡, 프로듀싱을 해주는 사람도 필요하고, 연주자도 있어야 하고, 나를 도와줄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니까 여럿이 하는 게 더 좋다. 혼자 다 해서 뭐가 잘 나왔을 때도 좋지만 네트워크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 뭔가 함께 해서 결과물이 나왔을 때가 훨씬 재밌고 좋다. 스스로 다른 사람과 같이하는 것에 대해서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래서 두려움도 크지만 그걸 잘 해냈을 때 성취감도 크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려고 작업하는 거니까 어느 시점에는 누군가와 꼭 연결되어야 하지 않나.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웃음)


두 번째 음반 《나의 정원으로》는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일러스트가 너무 예쁜 엽서와 CD 케이스까지 제작비가 만만찮았을 것 같다.


1집 때도 크라우드 펀딩 같은 플랫폼은 없었지만 비슷했다. 제작비를 모금하는 공연을 했고, 그 공연을 통해서 후원을 받고, 선주문을 받았다.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후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오프라인에서 했던 거다. 이번에도 크라우드 펀딩 하고 모자라는 것은 빌렸다.(웃음)


음반 제작비를 온전히 시장에서 환수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예술가로서의 경제활동은?


전업 예술가로 살기는 어느 시점부터 포기했다. 그렇게 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이 약간 피폐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그래서 예술로 돈을 벌 수 있으면 그건 보너스고, 돈은 다른 일로 벌자고 정리했다. 그랬더니 노래하는 것도 훨씬 즐거워지고 어느 자리든 기꺼이 가서 노래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나를 팔러 다녔기 때문에 (무대를) 골라서 가야 되고 출연료도 흥정해야 했지만, 이후로는 좋은 것만 해도 되고 즐거운 방식으로 해도 괜찮았다. 뮤지션 중에는 자기가 생존을 유지하는 일이 따로 있고 음악은 정말 자기 삶에 중요한 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다른 분야는 다르겠지. 연극은 특히나 협업이 중요해서 시간을 많이 투여해야 되고, 미술이나 클래식 음악도 사실 그걸 취미로 할 수는 없지 않나.


나의 생활은 예술가의 삶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운, 지금은 취미생활자의 삶이다.(웃음) 작년에 음반을 내고 가만히 돌이켜보니까, 음악을 만들어내는 생산자 혹은 무대를 만들어내는 퍼포머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노래를 매개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역할이더라. 그래서 음악감상회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만족스럽다. 그전처럼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식으로 소통하는 것보다 내가 얘기를 많이 하고 소통을 많이 하는 게 더 좋더라.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던 음악 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의 역할 하고는 조금 다르겠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페미니스트 더하기 가수의 자리를 좀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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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회(이하 음감회)도 궁금하다. 그전에 SNS에서 ‘방바닥 리사이틀’ 얘길 보고는 작은 무대를 선호하나 싶기도 했다.


사실 되게 고급스러운 공연도 하고 싶다. 다 같이 풀 세션 라이브로 이번 음반을 제대로 재현하는 공연은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의 작품처럼 만들어지는 무대는 매일 서기도 어렵거니와 대중과의 거리도 있다. 평소에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삶을 좀 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음감회에선 내가 디제잉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사람들이 막 울고 웃고 얘기하는 힐링 토크쇼다.(웃음) 처음에는 2집 크라우드 펀딩 참여자들이니까 엽서 그림을 보여주며 노래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풀었는데, 나중엔 나를 잘 모르는 관객들이 많아져서 내 소개부터 하기로 했다. 내 어린 시절, 페미니스트 가수로 활동했던 97년부터 2집에 대한 이야기까지 쭉 했다. 그러니까 지현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의 여성주의 문화 운동사를 본 것 같다는 평도 들었다.


옛날엔 음악감상실과 디제이 문화가 있었지만, 요즘에도 그런 게 가능한가?


요즘에는 오디오나 CD 플레이어가 없는 경우도 많고, 음악을 핸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이동 중에 그냥 배경음악으로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음감회를 하면 오롯이 그 음악을 듣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이번 음반은 편곡도, 연주도, 믹싱과 마스터링도 너무 훌륭한 사람들과 작업했으니까 이걸 정말 좋은 시스템으로 들려주고 싶어서 음감회를 기획했다. 음악을 집중해서 들으니 이어폰으로 들을 때랑 너무 다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위로되는 경험을 했다는 반응이 많다.


음악을 들으며 내가 페미니스트로, 레즈비언으로 살아온 얘기를 다 한다. 내가 레즈비언인 것도 모르고 온 어떤 관객이 “저는 태어나서 레즈비언을 처음 봤는데, 사는 건 다 똑같네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훨씬 거부감이 적다고 해야 할까? 그런 계몽의 효과들?(웃음)


음감회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주도 음감회에 아는 언니가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동네 오빠를 데리고 왔다. 50대인 언니보다 더 나이 많은 시골 남자니까, 뭔가 불편해하고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 후에 오빠가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처음이라 충격도 받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저렇게 자기가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고 자극이 되었다”고 했단다. 자기도 사실 남미 여행을 가고 싶은데, 아내에게 얘기 좀 해달라고 하시더란다. 결국, 아들이랑 둘이 여행을 갔다고 한다. 내가 자아를 찾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웃음)


페미니스트 더하기 가수의 자리를 찾은 것 같다고 했다. 페미니스트 가수란 어떤 역할일까?


나는 페미니스트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 내가 말하거나 쓰는 가사들은 내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이나 나와 관계된 환경들, 다른 사람의 삶에 관해 얘기할 때, 그런 세계관이 투영되어 음악과 함께 전달될 때, 그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 그게 진짜 액티비스트(activist)로서의 페미니스트 가수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주도 음감회에 온 동네 오빠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고 내 얘기를 했을 뿐인데, 이분은 어쨌든 그전까지 자기를 붙잡고 있었던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책임감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졌고, 부부간에 소통할 수 있게 했고, 아들과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페미니스트 가수로서 대중들을 만나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가 싶다. 페미니즘을 강의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노래를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고 수긍하고 깨어나는 정도? 그래서 이후의 삶에도 뭔가 생각하는 시간이 가끔이라도 생기면 좋지 않을까.


페미니즘이 어려운 게 아니라 차별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이 뭔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처음엔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겪어야 하나 하는 고민과 문제의식과 반항심에서 점점 더 관심을 두게 되었고 지금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인간으로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계가 된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다 같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각자 마음속에 평화를 찾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고, 그게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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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서 소녀서당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어떤 활동인가?


내 수업을 받았던 아이들이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맛있는 것 먹고 토론하고 수다 떨고 울고불고하던 것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처음에는 ‘청소년 페미니즘 공부방’이라고 했는데, 최근에 ‘청소년 페미니즘 교육 연구소 소녀서당’이라고 뽀대나게 바꿨다.(웃음) 거기서는 주로 청소년들-소년, 소녀와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한다. 앞으로는 청소년 페미니즘 교육을 하고 싶은 사람들과 연구모임도 꾸리고 싶다.


음반을 제작한 여성문화생산자협동조합 무지개공방도 궁금하다. 협동조합은 만들기도 운영하기도 쉽지 않다고 들었다.


영화감독, 디자이너, 미술작가 등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2016년 만들었다. 다들 언제가 이런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더라. 지금은 열두 명이다. 여성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서로 응원해주고 격려와 질책도 한다. 그동안 내 음반뿐 아니라 영화 제작도 하고, 전시회도 열었다. 여성문화생산자들의 생산물로 뭔가 장사를 해야겠다고 했는데, 장사는 좀 감각이 안 되는 것 같다.(웃음)


직업이 도대체 몇 개인가. 아직 얘기 안 한 직업은 뭐가 있나?


고양이 집사?(웃음) 많이 줄인 거다. 아, 곧 동화책 작가가 될 거다. 자비출판으로.(웃음) 전래동화를 보다가 너무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페미니즘-레즈비언 버전으로 새로 쓰고 있다.


예전에 홍대 앞 두리반 철거 사건 등 여러 가지 사회참여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사회참여 활동이 아니고 그냥 내가 불만이 많은 ‘프로 불편러’, 요새 애들 말로 ‘예민보스’라서 그런 것 같다. 비주류로 태어났으니까 다 마음에 안 드는 거다. 운 좋게 민주적인 가정에서 인간적인 권리를 존중받고 자랐기 때문에 부당한 차별을 느끼면 싸웠다. 두리반이나 카페 마리나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서 가는 거다. 사회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큰 의미보다는 그게 부당하다고 느껴지고, 내가 쫓겨나면 기분이 어떨까 싶고, 나도 쫓겨날 것 같고, 내 일 같고 그렇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내 것처럼 분노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내 삶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나만 안전지대에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다.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비주류고, 태어난 지 11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그렇다. 그렇지만 그게 주는 제3의 눈이 있는 것 같다. 주류에 있는 사람들은 성찰할 필요가 없잖나. 나는 계속 비주류로 살았기 때문에 성찰하는 제3의 눈이 민감하게 작용한다. 옛날에는 그것 때문에 쌈닭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 때문에 사려 깊고 품이 넓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비주류이긴 하지만, 사실 가진 자원이 많고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행운을 누려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와 소녀들과 할머니들에게> 노래 : 지현 / 샌드아트 : 최은영



어떤 행운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우리 외할머니가 행운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는 나를 불쌍하다고 많이 감쌌었는데 외할머니는 버릇없이 구는 것을 놔두지 않으셨다. 반찬 투정하면 먹지 말라고 싹 다 치워버렸다. 대가족인 외갓집 식탁에서는 어리다고 절대로 차별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라서 주눅 들지 않았다. 내가 커밍아웃했을 때 쳐들어와서 머리 끄집어 당기고 깽판을 치지도 않았다. “소수자의 삶은 힘든 거다.”라고 잘난 척하면서 얘기해 줬다. 내가 페미니즘을 만날 수 있었던 환경들, 엄마의 네트워크와 문화적 자본. 사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 주어진 거니까 그것도 행운이다. 더 찾자면 더 많겠지만. (웃음)


2집 음반을 듣고서, 변화의 시기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음악활동을 하고 싶으신지, 예술적 소망을 묻고 싶다.


(변화의 시기가) 맞는 것 같다. 일단 그전과는 다른 음악을 하게 되었고, 활동 방향을 달리 잡았으니까 변화의 시기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아저씨 싫다며 메가폰 잡고 소리 꽥꽥 지르면서 노래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지금은 사람들한테 스며들게 하는 게 정말 필요하다 싶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야지. 지금은 청소년 페미니즘 교육자로 자리매김을 잘 하는 게 소망이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인터뷰 사진 협조 _ 중경삼림

 프로필이미지

남은정 _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1997년 축제 스태프로 예술계에 발을 디딘 후 20년째 두리번거리고 있다. 사람과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그중에서도 제일 이해하고 싶은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정성스럽게 일하고 재미지게 노는 새콤달콤한 삶을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