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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중간정산}
꿈 많은 떠돌이, 공부쟁이 오바니

남은정 _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date. 2018.11.07

문화기획자 오은영



그녀는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었다. 꿈이 뭐냐고 물어본 사람은 고3 담임 선생님 이후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게 벌써 한 17년 전쯤이긴 하지만, 그때도 이십대 후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다. 나이 탓을 하면서 꿈을 잊어버리고 지운 채 직장인으로 살고 있던 나는 조금 당황했고 부끄러웠고 놀랐다. 이팔청춘이 아니어도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거구나!


그 후로 띄엄띄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때마다 그녀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도모하고 있었다. 얼마 전 인도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줄 알았는데, 다시 공부하러 오스트리아로 떠난다고 했다. 지난 5월, 송별 인사 겸 떠난 여행에선 ‘떠돌이 생활’을 하려면 항상 떠날 수 있게 짐을 잘 싸야 한다며 ‘긴소매 옷은 없으나 손톱깎이는 있는’ 배낭을 자랑스럽게 풀어 보인다. 조금 신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터뷰는 쑥스러웠는지 “이런 얘기가 [우주마가린]에 도움이 되겠냐”며 웃음과 농담으로 넘기려던 그녀와 결국 정색하고 녹음기 앞에 마주 앉았다. 그녀가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날, 이번엔 내가 그녀에게 꿈이 뭐냐고 물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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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_ 문화기획자

전남대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문화기획전공 예술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다움 아카데미와 대화문화 아카데미를 거쳐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난민 가정의 경제적‧문화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록빠(Rogpa, 친구를 뜻하는 티베트어)’ 활동가로 6년간 일했다. (사)문화다움 협력 연구위원이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에서 평화학을 공부하면서 평화와 문화의 접점을 찾고 있다. 문화를 매개로 한 평화 구현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할 계획이다.




주변에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긴 한데, 언니처럼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한 번도 뭘 배우고 있지 않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다 말해 줄 수 있나?


다 기억할 수 있을까?(웃음) 일단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서양철학을 2년 더 공부해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다음에 다움아카데미(현 (사)문화다움)에서 일하면서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예술경영과 문화정책을 수료했다. 그리고 영어학원에 갖다 준 돈도 꽤 된다.(웃음) 개인적으로 스페인어 공부를 조금 하기도 했고.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배웠던 것으로는 바이올린, 검도, 수영, 미혼 여성들이 거의 다 하는 요가도 있다. 미술학원도 몇 달 다녔다. 스케치 단계를 넘어 수채화까지 다니다 말았다. 이런 취미생활 외에 침‧뜸 공부를 한 적이 있고, 한동안 귀농에 꽂혀서 귀농학교를 다녔다. 학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웃음) 얼마 전까지는 평화대학에 다녔고, 한 십몇 년 전에는 인권대학도 다녔다. 이번에 해남에 갔다 온 것도 굳이 말하면 달학교다. 정토회에서 하는 불교대학도 다녔다. 컴퓨터도 배웠지. 전혀 써먹지 못했던 수준이지만, 인도에서는 컴퓨터 지식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웃음) 인도에서도 불교 강좌를 듣고 명상과 티베트어를 배웠다.


그 많은 걸 섭렵하려면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알쓸신잡’처럼 광범위한 학습 활동 중에 좀 더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돈 벌어서 책사고 공부만 했다. 손에 남아있는 게 없다.(웃음)


침‧뜸을 3개월 정도 배웠는데, 귀농하면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게 교육비와 의료비라고 하더라. 교육할 자식은 없으니까 됐고, 의료비를 줄여야겠다, 다른 사람에게도 해줄 수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배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불교 공부할 때도 느꼈지만, 아, 내가 사주 명리도 약간 공부를 했었는데...(웃음)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 같은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침‧뜸도 동양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나. 인간의 원리라고 할까?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고 생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다 보면 사람이 좀 더 겸손해진다고 해야 하나? 침‧뜸을 배우는 것이 그런 점에서 좋기도 했다. 불교든 명리학이든 삶의 원리를 각자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그것에 기반해서 삶의 방향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고, 굉장히 신비하다. 근데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은 아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가?


약간 집안 내력도 있다. 언니랑 동생도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엄마는 지금 노인대학에 다닌다. 뭘 끊임없이 배운다. 가족 채팅방에서 형제들이 서로 지금 학교 숙제하느라 바쁘다는 둥 그러고 있는데, 엄마도 노인대학 숙제 때문에 바쁘다 그러더라. 형제들끼리 “이제 우리 기분 알겠네. 쌤통이다.” 그랬다.(웃음)


어릴 때 책을 되게 좋아했기 때문에 잡다한 지식이 많은 편이었다. 대학 때 선배들이 “너는 르네상스 때 태어나서 백과전서파에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놀렸다. 내 관심사가 다양한 것도 있다. 개인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죽을 때까지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정서나 사고에 있어서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때그때 필요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기도 했지만, 어떤 형태로든 내가 생각하는 완성된 인간,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여러 분야에 대한 나의 이해와 관심을 유지하고, 세상에 대해서 항상 끈을 놓지 않고, 뭔가 새로운 정보와 사회 변화를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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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분야에 입문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철학 공부를 했는데, 꽤 재밌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그때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이 그림이었다. 없는 살림에 큰맘 먹고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여덟 권짜리 엄청 큰 그림 화집을 사기도 했다. 그림 보는 게 너무 즐거워서,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그때는 지방과 서울의 격차가 너무 컸고, 막연하게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밖에 몰랐다. 어쨌든 대학원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막연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1998년 다움아카데미가 한겨레신문에 5단 광고를 낸 것을 보고 전화를 해봤다. 친구 집에 얹혀사는 데다 돈이 하나도 없는데, 학비가 꽤 비쌌다. 계속 고민하다가 여기 직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력서, 자기소개서, 사업기획안을 써서 우편으로 보냈다. 우편물을 받았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하면서 직원 채용 계획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도 했다. 따로 연락을 주진 않았지만, 6개월쯤 후에 대규모로 인턴을 뽑는 걸 알게 되었다. 항상 관심 두고 지켜보고 있었거든. IMF 직후라서 실업극복 국민운동본부에서 기금을 대고 사람을 뽑게 된 거였다. 당연히 지원했고, 서류 통과하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옷이 남자 생활한복이라 그걸 입고 면접 보러 갔다.(웃음) 나중에 들어보니, ‘별 이상한 애가 왔다’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아무래도 인상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다움아카데미부터 지금의 문화다움까지, 문화기획자로 일하게 된 원동력이 그곳에서 생겼을 것 같다.


문화다움에서 일하면서 내가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가치 지향적인 사람이고,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거기서 강준혁 선생님을 비롯한 좋은 선생님을 많이 뵈었고, 그분들이 말씀해주시는 가치 같은 것에 많이 동의가 되었다. 물론 내가 예전에 학생운동 하면서 바라봤던 사회에 대한 가치와 충돌하는 지점도 많이 있었다. 집중하는 지점이 다르긴 하지만, 사적인 이익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문화다움에 존경심 같은 것을 갖고 있다. 문화예술을 배우고 내 생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현재의 나를 만든 부분이 굉장히 많다.


떠돌이 생활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록빠를 만나 떠돌이가 된 건가, 떠돌이가 되어 록빠를 만난 건가?(웃음)


직장생활을 하면서 제일 먼저 앰네스티를 후원했는데, 다른 곳을 좀 더 후원하려고 찾고 있었다. 그런데 2006년쯤 인도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정말 조잡한 록빠의 팸플릿을 보여주면서, 한국 여자분과 티베트 남자분이 운영하는 곳인데 아이들을 후원하고 싶으면 여기는 어떠냐며 소개해줬다. 그때까지 티베트에 대해 잘 몰랐는데 상황도 좀 알게 되고, 워낙 불교에 대한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 국가인 티베트에 조금 더 친근감이 생겼다. 그래서 후원을 하다 보니, 내가 후원하는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그 무렵 다움을 그만두고 인도 여행을 떠났고 다람살라에 가서 한 달 정도 자원봉사를 했다. 그때부터 떠돌이가 되었네. (웃음)


인도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문화예술분야 일은 접고 그냥 즐기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만, 그때는 지역 문화정책, 재단 설립방안 컨설팅하는 게 사회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고 현실에 반영되고 있는지 느끼기 어려웠고 점점 재미없었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보고서로 왔다가 사라지는 느낌? 좀 지쳤던 것 같다. 그래서 문화예술보다는 생태나 환경문제에 훨씬 관심이 많이 갔다. 그 후 조금 다른 분야인 대화문화 아카데미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록빠로 간 것으로 안다.


원래 내 계획은 세계여행이었다. 귀농이나 공동체 생활 같은 것이 사회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 외국의 공동체들을 좀 다녀보고 싶었다. 사실 먼저 세계여행을 떠난 친구가 부러웠다.(웃음) 출발하면 제일 먼저 록빠에 들러서 자원봉사를 하고 유럽이랑 미주대륙도 몇 군데 다녀오려고 찍어놨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거기서 할 일이 보였다. 여행 비자로 갔기 때문에 바로 정착하진 못했고 한국에 들어왔다가 중국, 몽골, 티베트, 러시아 여행하고 돌아가고, 네팔이랑 동남아 쪽 다니고 다시 들어가고 했다. 학생 비자로 정착해서 산 건 6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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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자원봉사하러 간다더니 아예 활동가로 일할 거라고 해서 좀 놀랐었다.


일이 재밌었던 것도 있고, 거기 생활이 너무 재미있었다. 하루가 매우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고, 동네도 작고, 만나는 사람도 몇이 안 되지만 살면서 가장 풍요로웠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변한 부분이 있다면 그 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보다 성격이 좋아졌다는 얘길 듣는데, 모두 다람살라에서 보낸 6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3년 정도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타임으로 일했고, 그다음은 반나절만 일하는 것으로 바꿨다. 업무량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인도와 티베트 사람들의 시스템에 맞춰서 일하기 때문에 내가 막 치고 나간다고 해서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 내가 한 달에 책 열 권을 기획할 수 있더라도, 열 권을 낼 돈도, 이유도, 그림이나 글을 써줄 사람도 없었다. 온종일 앉아서 일할 이유가 없었고 그것도 일종의 자원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근무시간을 줄이고 남는 시간에 자연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거나, 요가나 명상을 하거나 하면서 보냈다. 그냥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근데 그 모든 게 너무나 살아있게 느껴졌다. 똑같은 24시간이지만, 내가 순간을 기억하고 느끼면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물론 대단히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살 때보다 감각이나 정신을 맑게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런 점에서 호사스러웠고 행복했다.


티베트어로 된 동화책을 만드는 일도 했다.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본격적인 동화가 되기는 부족하고 교육용 책정도이다. 글자를 가르치는 책, 티베트 동물을 소개하는 책, 영국 작가가 쓴 책의 판권을 사서 번역 출판한 것도 있다. 총 다섯 권을 냈다.


처음 록빠에 갔을 때 티베트 아이들이 보는 책이 팸플릿 같은 느낌으로 가운데 스테이플러 찍어서 넘겨보는 식이었다. 표지만 컬러에 안에는 다 흑백인 경우가 많았고, 종이 질도 너무 나쁘고 얇고, 동화책이라고 하면서 그림도 많이 없었다. 동화책이라면서 보여주는데, 그림을 보다 보니 ‘엄지공주’고 ‘개구리 왕자’고 그렇더라. 번역된 책들 정도가 있었다.


알다시피 티베트 문화가 중국에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이 학교와 관공서에서 중국어를 쓰고, 출판이나 문학이 줄어들고 있었다. 우리는 티베트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티베트어 책을 만들되, 싸구려가 아니라 좋은 책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사실 저렴하게 만들면 책을 훨씬 많이 찍을 수 있겠지만 일부러 하드커버에 좋은 종이, 올 컬러, 대형 사이즈로 낸 거다. 거기서 활동하는 여러 NGO 중에서 미국에서 펀드를 받아 활동하는 친구가 우리 책을 보러 와서는 “이거 몇 명이나 사볼 수 있겠냐, 왜 이렇게 만드냐?” 약간 비웃는 듯이 말하더라. 약간 화가 나는 게, 티베트 애들은 다 허접한 책만 봐야 한다는 거냐 싶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여럿이 함께 볼 수 있게 도서관과 학교에 기증했고, 외국인에게 주로 판매했다. 그들이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책을 만들면, 우리는 좀 더 고급지고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책을 만들면 된다. 한 번도 본적 없는 퀄리티의 좋은 책을 만들면 티베트 사회에서도 반응이 오거든. ‘아, 저렇게 만들어야겠구나.’ 하면서 그 후 하드커버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에겐 그런 게 중요했고, 어느 나라 아이들이든지 좋은 책을 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돈이 많이 들어서 힘들었지만, 가장 보람 있는 일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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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동화 『생쥐와 고양이』(왼쪽), 『다와(달님) 아빠』 

(출처 : 록빠 홈페이지 https://www.rogpa.com/bbs/board.php?bo_table=fairytale)


어떻게 그렇게 매번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평화학을 공부하겠다는 결정도 그렇고, 늘 뭔가 시도하고 추진한다. 솔직히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이지 않나?


첫 번째는 내가 가진 게 없으니 잃을까 봐 두려울 게 없다. 물질적으로나 관계 면에서 별로 가진 게 없다. 그래서 선택을 하는데 구애되는 게 없고 나를 중심으로 이기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두 번째는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해 항상 생각하다 보니 ‘지금 열심히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으면 좋지만, 기승전결 없이 죽는 경우가 많다. 굉장히 소수의 복 받은 사람만 발전하고 절정을 누리고 자기 인생을 정리하고 죽는 거다. 내가 그것이 언제인지 모르잖나.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해야 하는 것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평화에 관심이 생기고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그걸 공부하면 되지, 내가 곧 정리할 나이니까 주저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언제부터 평화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가?


거기서 아이들 만나고, 도서관을 만들고, 책을 만들고, 흩어져있는 학교에 책꽂이를 설치해놓고 새로운 책을 계속 교환해주는 북버스라는 일을 했는데 다 좋았다. 그전까지 티베트 사회에선 없었던 일이니까 이런 일이 현장에서 벌어지면 작은 씨앗이 되어서 의미가 있겠지만, 그걸 딱 묶어내는 것이 안 보여서 아쉬운 느낌이 있었고, 사회가 좀 더 변화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그간의 경험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보니 더 ‘큰 그림’을 보는 데 관계된 일을 하고 싶었고, 그건 난민, 인권 이런 것보다는 평화 일반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중국과 티베트의 문제처럼 타국을 침략하는 문제, 전쟁의 문제가 같은 맥락 안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평화학을 공부해보면 방향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정산]은 변화의 시기에 있는 문화예술계 인물을 소개하는 콘셉트이다. 스스로 변화의 시기라고 느끼나? 향후 계획은?


영화 잡지에서 적정 관람 가격을 매겨주는 것처럼 정산해 달라. 정산결과 마이너스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웃음) 사는 곳이 달라지는 것이 큰 변화이다. 사는 곳, 쓰는 언어, 만나는 사람이 다 달라지는 건데. 그래서 무섭고, 두근두근한다.


지금 당장은 그다음까지 생각할 만큼 정보나 능력이 없지만, 공부가 끝나면 한국에서 평화 관련 활동을 하고 싶다. 보통의 NGO들과 다르게, 재밌게 하고 싶다. 평화에 관한 얘기를 즐겁고 재밌고 생활에 근접한 방식으로 해보고 싶다. 자라나는 친구들이 일찍부터 그런 마인드를 접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우린 숙제 안 했다고 부모에게 맞는다든지 너무 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자랐다. 폭력이 삶의 원동력이 되면 안 되잖나. 어린 친구들에게 더 일찍 평화를 접하고 생각해볼 기회를 주면 사회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 _ 주소진(참치나무)

 프로필이미지

남은정 _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1997년 축제 스태프로 예술계에 발을 디딘 후 20년째 두리번거리고 있다. 사람과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그중에서도 제일 이해하고 싶은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정성스럽게 일하고 재미지게 노는 새콤달콤한 삶을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