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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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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누군가의 자전거}
국수 한 그릇

꼬로꼬로라이더  date. 2018.12.20

영화 < 달콤한 인생 >. 선우 ( 이병헌 ) 는 끔찍한 폭력과 살인을 불사하고 어렵사리 마지막 목표물 앞에 선다 . 피투성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내뱉는 한 마디 .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2014,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자의 마지막 한마디가 냉장고 소음처럼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나 혼자 산다>의 육중완을 시작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망원시장 일대의 맛집과 망원동 골목길이 소개될 때만 해도, 우리 동네가 텔레비전에 나온다며 신기해할 따름이었다. 이내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한 망원동에 주말마다 관광객이 북적이기 시작하고, 예쁜 커피숍들이 한 집 걸러 하나꼴로 우후죽순 생겨나자 스멀스멀 걱정이 찾아왔다. 이러다 월세 오르는 거 아닌가, 쫓겨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1층 점포 자리도 아니고 언제 사그라들지 모를 반짝 유명세에 설마 그러겠나 싶어 어느 정도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세입자의 상식과 집주인의 상식은 천지 차이인 것을. 결국 성미 급한 집주인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월세 인상 통보를 해왔고, 우리는 쫓기듯 망원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이 보증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고, 한 달 이후에나 보증금을 내주겠다는 무책임한 약속만을 반복하며 발목을 잡았다. 그러면서 바닥이 더럽네, 화장실이 망가졌네, 벽에 못을 박았네, 하며 끊임없는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부동산에도 물어보고 없는 인맥 다 동원해 법률 자문도 받아봤지만, 결론은 집주인 심기를 건들지 말고 일단 대화로 풀어보라는 것.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소송을 생각하는 건 차후의 문제였다. 더럽고 치사해도 어쩌나. 보증금이 집주인 손에 있으니, 하라는 대로 맞춰주며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찌든 때에 좋다는 독한 세제를 뿌려놓고 잘 보이지도 않는 바닥 얼룩을 철수세미로 벅벅 문지르고 앉아있자면 문제의 한마디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행신동의 새 작업실로 무사히 이사했다. 건설 사무실의 자재 창고로 썼다던 새 작업실은 다세대 주택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직접 바닥에 에폭시도 바르고 가벽도 세우고 환풍기도 새로 달았지만 지하실 특유의 퀴퀴하고 음습한 기운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낮에도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지하실에 이른 아침부터 들어가 있을라치면 도통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새 작업실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있긴 했지만 쓸 수 없었다. 야외 틈새 공간에 억지로 끼워 넣은 수세식 화장실은 무릎을 세워 똑바로 설 수도 없을 만큼 천장이 낮았고, 어깨가 닿을락 말락 할 만큼 좁았다. 변기는 누렇게 찌들어 있었고, 성의 없이 거칠게 마감해 놓은 시멘트벽에는 누가 싸질러 놓았는지 모를 오줌 방울이 언제나 선명했다. 잠금장치도 허술해서 누군가 밖에서 조금만 힘주어 당기면 속절없이 열렸다. 작업실의 남자들이야 아쉬운 대로 쓸 수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들어가 앉을 엄두가 안 났다. 그날부터 나는 화장실 난민이 되어야 했다. 급한 작업에 어쩔 수 없이 늦게까지 남아있던 날, 새벽 1시께 문 열린 화장실을 찾아 큰길 가 상가들을 하나씩 헤매고 다닐 때는 정말 누구라도 붙잡고 소리치고 싶었다.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새 작업실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정이 안 갔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이라는 값싼 임대료에 대한 대가였으니 할 말은 없었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작업실을 멀리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올 즈음, 반전은 엉뚱한 곳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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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행신동 작업실 가는 길


행주산성 元祖 국수집

화장실 난민 생활에 지쳐 작업실에 발길을 끊은 지 이삼 주쯤 지났을까, 괜스레 손을 놓고 있다는 죄책감에 조바심이 나던 어느 날이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자전거나 타고 갔다 와볼까 싶어 라이딩을 핑계 삼아 작업실로 향하던 길목에서 만난 국수집은 외관부터 범상치 않았다. 가건물로 보일 만큼 낡고 허술한 단층 건물은 가로로 길게 누운 압도적인 크기의 간판에 짓눌려, 멀리서 보면 붉은 궁서체로 쓰인 국수집만 동동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면의 창은 개방되어 있고, 그 앞에 놓인 좁고 긴 테이블은 주로 혼자 온 손님들 차지였다. 놀라운 것은 가게 앞에 늘어선 자전거들이었다. 긴 자전거 거치대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각양각색의 자전거들을 보고 있자니, 꼭 자전거를 타고 와야만 이 집 국수를 맛볼 수 있는 건가, 싶은 착각이 들었다. (훗날 알고 보니, 이곳은 라이더들의 성지라 불리는 팔당 초계국 수집 , 파주 닭 국수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명 국수집이었다 .) 고작 10km 남짓의 거리였지만 , 제법 쌀쌀해진 초겨울 바람을 뚫고 달려온 탓에 코끝이 빨개진 나는 미끄러지듯 국수집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날 이후 한동안은 국수를 먹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작업실에 가게 됐다 . 말해 봐요 . 나한테 왜 그랬어요 ? 숱하게 물어도 들을 수 없었던 대답이 국수 한 그릇이 되어 돌아온 셈이었다 .


국수 한 그릇.jpg


행주산성 원조국수집의 국수는 이맘때, 추위를 뚫고 자전거를 타고 가서 먹어야 제맛이다. 메뉴는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둘뿐. 그중 잔치국수가 단연 압도적이다. 4000원짜리(지금은 4500원이다) 잔치국수를 시키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금세 넓고 깊은 스댕 그릇 한가득 따뜻한 국수가 담겨 나온다. 고명이라고는 툭 털어 넣은 고춧가루에 김 가루가 전부지만, 양만은 누구도 서운하지 않을 만큼 푸짐하다. 이 집은 따로 숟가락을 주지 않으니, 누구든 두 손 가득 묵직하게 안기는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신다. 코와 혀에 감기는 깨끗하고 진한 멸치국물로 배속을 따뜻하게 덥히면 하, 탄식이 절로 터진다. 적당히 잘 삶아낸 하얀 소면에 짜지 않게 만든 대파 간장 양념장을 얹어 한 번, 유일한 반찬인 배추김치를 얹어 한 번, 그릇째 국물과 함께 후루룩 빨아들이며 또 한 번, 연거푸 먹다 보면 그 많던 국수도 어느새 바닥이다. 그득하게 채운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 자전거에 앉으면 이상하게 그리 춥지 않다. 추위에 바짝 긴장했던 근육이 국수 가락마냥 풀려 움직임도 가볍다. 배가 무거워서 그런지, 마음은 조금 산뜻해지는 듯하다. 모두 한 그릇 국수의 힘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시인 백석 , 국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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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로꼬로라이더

커트 보니것을 흠모해 담배를 배웠지만 잇몸 염증에 굴복해 금연했다. 예술은 믿지 않는데 어쩌다보니 예술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