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누군가의 자전거

HOME - 250g - 누군가의 자전거

12호
{누군가의 자전거}
쓸모없는 것을 위한 쓸데없는 열정 (상)

꼬로꼬로라이더  date. 2019.01.29

허브 샤이너  Hub Shiner :  아무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지만


 

  “평화시장 앞에 줄지어 선 가로등들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 있지 않습니다.” 

  “단성사 옆 골목의 첫 번째 쓰레기통에는 초콜릿 포장지가 두 장 있습니다.” 

  “적십자병원 정문 앞에 있는 호두나무의 가지 하나는 부러져 있습니다.” 

 

 

소설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주인공 김金은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이에게 별 쓰잘머리 없는 것들을 일일이 지껄인다. 타인의 욕망으로 드글드글한 서울에서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일은 초콜릿 포장지나 부러진 나무 가지 만큼이나 비루하지만, 그의 눈은 기쁨으로 빛난다. 서울 2019년 겨울, 나는 이따금씩 김을 떠올리며 슬그머니 웃는다. 보잘것없는 발견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김의 마음이 반가워서다. 쓸모없는 것에 대한 열정이라면, 나도 김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작은 액세서리에도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바테이프(핸들에 감싸는 테이프), 벨, 램프, 가방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물통 하나에도 신중해진다. 벨이나 램프, 물통이야 고만고만한 가격대에 옵션도 다양한 반면, 바테이프나 가방의 경우에는 가죽제품이 압도적으로 비싸다. 클래식한 가죽제품들을 보다보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욕심이 나지만, 그놈의 돈이 항상 문제다. 그렇다고 포기는 금물. 살 수 없다면 만들면 된다. 
 

1.jpg

살 수 없다면 만들면 된다. 바테이프부터 허브샤이너, 와인캐리어, 캐리 핸들과 담요 걸이까지. 쪼가리 가죽으로 만든 액세서리로 무장한 꼬로꼬로


신설동 가죽시장에서 헐값에 무더기로 구입한 쪼가리 가죽과 기본 공구 몇 개, 그리고 만인의 스승이신 유튜브면 충분했다. 그럴싸한 바테이프도 만들고, 작은 공구용 파우치도 만들었다. 내친김에 열쇠고리나 명함지갑도 만들어보고, 필통과 가방에도 도전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만든 건, 역시 ‘허브 샤이너’ 였다.

허브는 자전거의 바큇살이 모여 있는 중심축이다. 오랫동안 자주 탄 자전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브에 기름때나 먼지가 새카맣게 들러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탈 때마다 매번 닦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가 허브는 바큇살에 비해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허브를 항상 반짝반짝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허브 샤이너다. 원리는 간단하다. 돌아가는 원통 위에 걸레를 하나 고정시켜 두는 셈이다. 바퀴가 돌아갈 때는 허브도 돌게 마련이니, 샤이너를 걸어두면 바퀴가 돌아갈 때마다 허브가 닦인다. 허브 샤이너는 허브가 금속 재질인 클래식 자전거나 생활 자전거에 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나는 생활 자전거일수록 꼭 허브 샤이너를 걸어줄 것을 추천한다. 값비싼 자전거이기 때문이 아니라, 매일 같이 발이 되어주는 자전거이기에 미처 손닿지 않는 작은 부분까지도 아끼고 살피며 관리해야 한다.   
 

2.jpg

반짝반짝 허브 샤이너


없는 살림에 이것저것 만들어 대는 통에 쪼가리 가죽들은 이미 너덜너덜해진지 오래였지만, 허브 샤이너는 손목 시계줄 만한 가죽만 있어도 만들 수 있었다. 나와 작업실 메이트들은 남은 조각들을 총동원해 작업실의 모든 자전거에 걸고도 남을 만큼의 허브 샤이너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색색의 가죽으로 만든 허브 샤이너를 모든 자전거 바퀴에 걸고, 또르르르 구를 때마다 반짝일 허브를 상상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쪼가리 가죽으로 만드는 자전거 액세서리에 재미가 붙은 나와 작업실 메이트들은 플리마켓에서 그것들을 팔아보겠다고 나섰다. 역시나 주력 상품은 허브 샤이너였다. 틈만 나면 테이블에 둘러 앉아 가내 수공업자들 마냥 허브 샤이너를 만들었다. 다른 디자인의 시판 제품을 보면서 응용해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모양을 내보기도 했다. 스티치로 포인트를 주기도 하고 작은 장식을 달기도 했다. 좀 신경 써서 새롭게 만들면, 우리끼리 자랑하고 칭찬하고 으쓱해했다. 우리는 자신만만했다. 자전거 인구가 그 어디보다 많은 망원동 아닌가. 심지어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니, 불티나게 팔릴 것이라 예상했다. 너무 싸게 파는 거 아닌가, 너무 빨리 팔리면 어떡하나, 섣부른 걱정까지 하면서.  
 

3.jpg

#망원동 플리마켓에서 #재고는 어쩌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플리마켓은 대실패였다. 너무 장사가 안 되니 허겁지겁 자전거 카페에 올린 홍보글을 보고 급히 찾아온 회원님께 고작 하나 팔았을 뿐이었다. 미끼 상품이었던 허브 샤이너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대부분 팔찌나 열쇠고리인 줄 알고 다가왔다가 허브 샤이너의 용도를 설명해 주면 여지없이 돌아섰다.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대놓고 뭣 하러 그런 걸 주렁주렁 걸고 다니냐며 어이없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이도 있었다. 


 

“대체 그게 왜 필요한 건데요?” 

“허브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거든요.” 

“보이지도 않는데 굳이 깨끗하게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그게 ……,  허브는 잘 닦지 않게 되는데 ,  샤이너를 걸면 반짝반짝 빛이 나니까  ……."

“어차피 허브 샤이너를 달면 보이지도 않잖아요.” 

“아니, 그래도 허브가 깨끗하다는 걸 알 수는 있을 테니까   ……."

“ 보이지도 않을 허브가 깨끗하면 뭐가 좋은데요 ?”

“그게 그러니까 ……  허브가 반짝반짝해지면 좋으니까 ……  예쁘기도 하고 ……. ”

“ …… ”

 


(to be continued)

 프로필이미지

꼬로꼬로라이더

커트 보니것을 흠모해 담배를 배웠지만 잇몸 염증에 굴복해 금연했다. 예술은 믿지 않는데 어쩌다보니 예술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