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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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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누군가의 자전거}
쓸모없는 것을 위한 쓸데없는 열정 (하)

꼬로꼬로라이더  date. 2019.02.26

도자기 안장 : 사용할 수 없어도 괜찮아?


이렇게 매번 다 버려도 괜찮아요?”


2013, 개인전 일정을 모두 마치고 작품을 철수하고 있는 내게 유난히 하얀 피부의 큐레이터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무척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매번 힘들겠다며 내 손목을 무심히 잡았다 놓았는데, 유난히 하얀 그녀의 손과 거뭇거뭇한 나의 잿빛 팔목이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나는 어쩐지 그 장면을 여태 잊을 수가 없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설치 작품들은 유독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되는 재료로 제작된 작품의 특성상 보관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특정 공간 맞춤형이라 다른 곳에서는 다시 설치할 수 없어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전시라도 하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지하 작업실 안에서 한 장의 사진만을 남긴 채 버려진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작품이 빛 한 번 못보고 특수폐기물 마대에 담겨 처분될 때마다, 다시는 이런 작업은 하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새 작품을 준비할 때면 또다시 연출에만 빠져 이동, 보관, 사후처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부모 잘못 만나 마대자루 신세로 폐기된 작품들만 애처롭다.


20144월 중순, 나는 양구백자박물관에서 기획한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었다. 열댓 명의 조각가들이 열흘 남짓 양구백자박물관의 체험실에서 백토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면 박물관 측에서 이를 가마에 구워 완성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학부 시절 두어 번, 소품 수준의 습작을 테라코타(흙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것)로 만들어본 적은 있지만 도예는 영 낯선 기법이었다. 심지어 워크숍에서 만든 작품은 이후 박물관 내 야외 공원에 일정기간 전시될 예정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재료와 기법에 대해 무지한 상태인데 전시할 작품까지 만들어야 하다니, 나는 쉽게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워크숍 기간에도 밥벌이를 쉴 수 없어 서울과 양구를 오가며 짬짬이 참여해야만 했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처음 사나흘을 흙장난이나 하며 아깝게 흘려보내고야 말았다. 양구에서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동안에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박물관에서는 한참 전부터 아이디어 스케치를 요구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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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양구를 오가며 제작한 도자기 안장, 매끈하게 다듬은 것도 있고 몰드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것도 있다. 

  

어쩌다 자전거 안장을 도자기로 구워야겠다고 결심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부끄럽지만 무슨 컨셉으로, 뭘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희미하다. 그저 서울과 양구를 오가며 정신없이 작업했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자전거 안장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그날 밤, 나는 가지고 있던 푸조(Peugeot) 안장으로 밤늦도록 4개의 석고 몰드를 제작했고 다음날 일정이 끝나자마자 양구로 향했다. 3시간이 넘도록 운전해 양구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체험실 사용은 10시까지였지만 정신없이 흙판을 밀어 안장을 뽑아냈다. 몰드에서 유백색의 점토 안장들이 하나씩 뽑혀 작업대에 나란히 줄을 잇기 시작하자, 이성은 점점 마비되어 갔다. 아기 볼처럼 뽀얗고 부드러운 자전거 안장들이라니. 의미와 용도를 망각한 채, 그저 많이 만들어서 그 안에 둘러싸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날부터 서울과 양구를 오가며 워크숍 내내 백토 안장을 뽑고, 또 뽑았다. 버려질 것을 빤히 알면서도 매번 멈추지 못했던 못난 성미가 쓸데없는 열정으로 불타올라 또다시 발휘된 셈이다.


양구의 해는 이상스레 짧았다. 언제나 예상보다 빨리 해가 졌고, 어둠의 농도가 짙었다. 볼 때마다 감탄했던 양구의 맑고 푸른 풍광도 어둠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높고 깊은 산중의 구불구불한 국도를 따라 박물관으로 향하는 밤길은 늘 오싹하고 긴장됐다. 차량 통행도 별로 없고 가로등도 많지 않았기에, 야간 운전은 언제나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안장들이 보송보송 마른 채,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밤낮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봄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에는 도로로 튀어 나온 개구리들이 타닥타닥 밟혔다. 전조등 불빛에 점점이 반짝이던 도로가 수상했지만 그것들이 전부 개구리였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음날 아침, 타이어에 납작하게 들러붙은 개구리를 발견하고 기겁하고 있던 내게, 간밤에 도로 위의 반짝임이 모두 개구리였음을 확인해 준 이는 양구에서 나고 자랐다는 박물관 직원이었다. 그는 양구에서는 개구리를 물토끼라 부른다는 설명도 덧붙이며 태연하게 개구리를 던져버렸다.


뽀얗고 보송보송하던 안장들이 매끈하게 구워져 나온 건 그로부터 2달 후였다. 대부분은 투명 유약을 발라 백토의 느낌을 살렸고, 몇몇은 검은색, 적색, 초록색 유약을 발랐다. 가마에서 갈라져 버린 것과 박물관 측에 기증하기로 한 안장을 제하고도 30개 남짓의 도자기 안장이 손에 들어왔다. 벽에 걸기도 하고, 책상에 늘어놓기도 하며 한참을 뿌듯해 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한두 개 탐을 내면, 이미 나눠줄 계획이었으면서도 오만가지 생색을 냈다. 내가 서울에서 양구까지 왕복 6시간을 운전해서 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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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마켓 준비 중. 뽀얗고 매끈한 도자기 안장이 사랑스럽다.

 

살생도 불사하고 정신없이 만들어온 도자기 안장들은 얼마 뒤, 작업실을 이사하며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의미도 용도도 없이 불타는 욕망 하나로 만든 것들이라, 가끔 꺼내어 보며 흐뭇해할 때를 제외하면 주로 상자에만 처박혀 있었다. 벽에 한두 개 걸어 두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내가 작업실을 두 번이나 옮겨 다니는 동안,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안장들은 상자채로 이사만 따라다녔다. 딱 한 번, 도자기 안장들을 직접 만든 허브 샤이너, 와인캐리어와 함께 망원동 플리마켓에 내놓은 적이 있었다. 안장 사이즈에 맞는 상자도 구비해가며 나름 작심하고 내놓았지만, 결과는 대참패.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말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물었고, 그 앞에서 나의 도자기 안장들은 번번이 무너져 내렸다. 그 후, 여태껏 상자 속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욕망에 휩싸여 쓸데없이 불타오른 열정의 말로는 종종 씁쓸하다. 제대로 주목 한번 받지 못한 채 폐기 처분되기도 하고, 갈 곳을 잃은 채 처박히기도 한다. 열정의 대가로 흩어져 버린 돈과 시간과 노력 앞에서 후회가 몰려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없는 것들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쓸데없는 열정은 막아볼 도리가 없다. 용도와 기능과 의미가 명백한 것만 살아남는 세상이라면, 나 같은 예술가는 폐기처분 1순위일 것. 그러면 뻣뻣한 마대자루가 나을까, 어두운 상자 속이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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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로꼬로라이더

커트 보니것을 흠모해 담배를 배웠지만 잇몸 염증에 굴복해 금연했다. 예술은 믿지 않는데 어쩌다보니 예술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