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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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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1호
{누군가의 자전거}
예술가의 똥(1)

꼬로꼬로라이더  date. 2020.04.09

1. 

  후, 아아, 하나 둘 셋, 잠시 후 2시부터 도슨트의 전시설명이 진행됩니다. 전시설명을 들으실 관람객 여러분들은 원형전시실 중앙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잠시 후, 도슨트의 전시설명이 진행될 예정이오니 전시설명을 원하시는 관람객 여러분들은 원형전시실 중앙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둘 넷 여섯, 여덟, ……, 스물여섯, 스물여덟…. 2시 됐어요? 시작할까요? 네, 안녕하세요, 주말이라 그런지 정말 많은 분들이 와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 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예술 혁명-패러다임을 바꾼 예술 실험》 展에 대한 전시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도슨트 최희정입니다. 저희 미술관에서 약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예술 혁명》 展은 제목 그대로 예술에 대한 인식과 기대를 180도 바꾸어 놓은 혁명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앞으로 약 40여분 동안, 여러분은 저와 함께 총 세 개의 전시실을 돌아보면서 현대 미술의 선구자적 작품들을 만나보시게 될 겁니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예술 혁명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볼 텐데요. 혹시, 이 작품이 뭐처럼 보이시나요? ……그냥 편하게……. 네? 뭐라고요? 맞아요. 통조림이죠. 그렇다면, 이 10개의 통조림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요? …… 네? 물감이요? 아닙니다. 이 통조림들은 이탈리아 예술가 피에르 만조니가 1961년에 발표한 작품인데요. 제목은, . 아, 욕이 아니라, 이 통조림에 아티스트의 쉩이 들어 있거든요. 네, 그러니까 예술가의 똥이……. 만조니는 자기 똥을 90개의 작은 깡통에 밀봉한 후, 서명과 함께 시리얼 넘버를 매겨서 출품했는데요. 작품의 가격을, 그러니까 자신의 똥값을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책정했다고 합니다. 이 깡통 하나가 30그램이니까, 작품 하나의 출품가가 금 30그램의 가격과 같았던 거죠. 아무리 예술 작품이라 그렇지, 더러운 똥을, 그것도 이렇게 누런 깡통 따위에 들어 있는 똥을 누가 돈 주고 사겠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품은 미술의 엘리트주의와 상업주의를 풍자한 걸작이라는 평판을 받으면서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2003년에는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가 4번 똥을 5만 2,000달러에 사들였고,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는 18번 똥이 12만 4,000유로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네? 한화로요? 그러니까, 4번 똥은 6천만 원 정도고, 18번 똥은 1억 7천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굉장하죠? 똥 한번 싸면 차 한두 대 값이 그냥 나오는……, 아니,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시대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실험적인 태도로 자신의 똥마저도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만조니의 작품이야말로 저희 《예술 혁명》 전시의 기획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는…… 네? 이거 진짜 똥이냐고요? 아, 그게, 사실 확실하지는…… 그러니까 아무리 깡통이어도 예술작품이니까 감히 따 볼 수가…… 게다가 안에 똥이 들었다니까 따보기가 좀…… 어쨌든, 확실한 건 만조니는 똥이라고 주장했고, 그 똥이 지금 현대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 너무 지체된 것 같네요. 이제 1전시실로 이동해서 차근차근 작품들을 감상해볼까요? 그럼 다 같이 이동하겠습니다. 


2. 

  야속하게도,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느릿느릿 기어들어 온 햇빛이 어느샌가 기세등등하게 방안을 점령했다. 지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숨을 곳을 찾았다. 고개를 돌려보기도 하고, 배게 밑으로 머리를 집어넣기도 하다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꽁꽁 싸맸다. 푸릇한 햇빛은 기어이 이불 속까지 따라 들어왔다. 결국은 항복. 어차피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매번 버틸 만큼 버텨보는 것이 그녀의 기상습관이었다. 암막 커튼을 치는 것을 잊고 잤다니, 억울한 마음에 앉은 채로 엎드려 잠시 잠을 쫓았다. 침대에는 그녀 혼자였다. 간단히 침구를 정리하고 서재로 향했다.  


  일어나, 나 좀 이따 나가봐야 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상원은 항상 서재에서 잤다. 서재라기에는 창고에 가까운 방에서 그는 철 지난 옷상자와 선풍기와 청소기 따위에 둘러싸여 자고 있었다. 옛날 작업실에서 쓰던 접이식 침대가 술 취한 상원이 애용하는 잠자리였다. 상원을 흔들어 깨우니 묵은 술 냄새가 났다. 으음, 나 커피 좀…… 찐하게. 

  지원이 포트에 물을 올리고 핸드 그라인더로 원두를 다 갈았을 때쯤 하품을 하며 식탁에 앉은 그는 두통이 있는지 관자놀이를 주먹으로 꾹꾹 누르며 작게 신음했다. 그녀는 누구랑 얼마나 마셨냐고 건성으로 물으며 캐틀에 옮겨 담은 물을 드립퍼에 부었다. 부풀어 오르는 원두에서 그윽한 커피향이 올라왔다. 그는 개새끼, 병신새끼, 꼰대새끼들과 술을 마셨다고 했다.   

  딱 한 잔만 더, 딱 한 잔만 더. 술버릇 중에 제일 고약한 게 딱 한 잔만 더 하면서 안 가는 거야. 병신 새끼들. 그 개새끼들 아주 가관이야. 니 작업은 개념이 너무 약하다, 레퍼런스가 부족하다, 세련미가 없다, 꼰대 새끼들. 작업도 거지 같은 것들이.  

  빙글빙글 커피를 내리던 지원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대신 커피를 머그에 나눠 담고 봉지째 식탁 위에 놓인 모닝빵 하나를 꺼내 물었다. 또 시작이야, 그녀는 입 한가득 빵을 욱여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상원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개새끼, 미친 새끼, 병신 새끼들이 간간이 신경에 거슬렸지만 그럴 때마다 커피를 마시고 빵 하나를 더 입에 물고 커피를 마셨다.  

  최근 몇 년 사이, 상원의 그림을 찾는 전화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삼 년 전만해도 대형 아트페어나 기획 단체전에 작품을 내달라는 큐레이터들의 요청이 분기별로 한두 통은 걸려왔었다. 모교에서의 강의를 그만둔 작년부터는 그마저도 뚝 끊겼다. 잊혀지면 안 되니 자꾸 얼굴을 내비치라는 친절한 선배들의 전화만이 드문드문 걸려왔다. 매번 그들의 친절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가끔 선배들의 전시 오프닝이나 큐레이터와 평론가들의 술자리에 다녀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과음을 했고 서재에서 잤으며 개, 진상, 병신, 꼰대, 거지 등의 새끼들을 소환했다.


  그만!


  지원은 하마터면 머금고 있던 커피를 내뿜을 뻔했다. 방금 내가 말한 건가. 엉겁결에 속말을 내뱉은 건가 싶어 놀란 눈으로 상원을 쳐다봤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서 공사해?

  무슨 소리가 난다는 거야.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

  이게 안 들려? 아래층에서 천장 뚫는 거 아냐?

  무슨…… 아무 소리도…….


  상원은 한참 만에 손을 풀었지만, 한참 동안 긴장을 풀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막을 수 있도록 얼굴 양옆으로 손을 벌린 채 눈알을 굴렸다. 한 바퀴, 두 바퀴, 왼쪽 오른쪽, 오른쪽 왼쪽, 위아래, 위아래, 위, 위, 아래. 지원은 그제야 입안에 물고 있던 커피를 삼키며 그의 얼굴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이리저리 구르던 눈알은 멈췄지만, 지원에게 초점을 맞추지는 못했다.


  아직, 저기, 술이 덜 깼나 봐. 나 좀 쉴게.


  그녀는 서재로 들어가는 상원의 뒷모습을 보며 침실로 가서 편하게 자라고 말할까 했지만, 대신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 술이 덜 깼다니까, 술 취한 몸은 서재가 더 익숙할 테니까, 그냥 그가 하는 대로 두었다. 그릇과 컵들을 챙겨 싱크대로 가져갔다. 순간, 커피포트 옆에 둔 휴대폰이 반짝였다.


  [부재중 전화 1통]

  혹시? 발신자를 확인하려는 찰나, 드드드, 진동이 울렸다. 

  

  그만!

   

  서재였다.


3.

  한밤중에 갑자기 시작된 수색 작전으로 침실은 순식간에 난잡해졌다. 이불과 베개는 방바닥에 널브러졌고 침대는 가방과 가방 안에서 쏟아져 나온 노트며 파우치, 지갑과 열쇠, 무심히 챙긴 영수증과 어디선가 받아 들었을 피트니스 센터 전단지들로 어지러워졌다. 지원은 침대 옆에 놓인 협탁의 서랍들을 거칠게 여닫다가, 곧이어 화장대 서랍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을 리가 없지, 하다가도 의심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다는 듯 서랍 안의 물건들을 모두 헤집었다. 대체 어딜 간 거지. 머릿속으로는 집에 돌아온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동선을 다시 한번 꼼꼼히 되짚으면서 손으로는 바닥에 흩어진 침구들을 뒤적였다. 지원은 20분 전에 이미 현관부터 거실 소파와 탁자, 주방과 식탁까지, 한 차례 수색을 마친 상태였다. 남은 곳은 침실과 서재뿐이었는데, 서재에는 들어간 일이 없으니 당연히 그것은 침실에 있어야 했다. 지원의 초점 없는 눈이 불안하게 방 안을 훑었다. 휴대폰이 남긴 최후의 기억을 잡으려는 듯 어수선하게 흔들리던 시선이 활짝 열려있던 방문 앞에서 멈춰 섰다. 혹시…… 방문 밖으로 던져진 지원의 몸이 다급하게 화장실을 향했다.

  휴대폰은 세면대 위에 있었다.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 들른 기억은 여전히 나지 않았지만, 세면대 위에 고이 놓여 있는 휴대폰이 그녀의 행적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까칠한 입술을 혀로 훑어 적셨다. 씁쓸했다. 재빨리 휴대폰을 들어 문자-받은 메일 보관함-보낸 메일 보관함-수신확인-통화목록을 뒤졌다. 언제나 같은 순서였다. 기다리던 연락은 없었다. 그제야 무감각했던 몸에 요의가 느껴졌다. 

  그녀는 벌써 일주일 전부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양치질을 할 때도 휴대폰을 쥐고 있었기에, 마치 휴대폰이 그녀의 손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휴대폰을 확인했다. 언제나 문자-받은 메일 보관함-보낸 메일 보관함-수신확인-통화목록 순이었다. 

  변기에 앉아 평론가에게 보냈던 자신의 메일들을 다시 찾아 읽기 시작했다. 문장은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지, 행여 경솔한 표현은 없는지, 그녀의 용건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호응이 어긋난 문장은 없는지, 오탈자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꼼꼼히 곱씹었다. 그녀가 이 주 전에 보낸 메일은 적당히 사무적이고 적당히 정중했다. 일주일 전의 메일은 조금 초조했지만, 충분히 정중했다. 사흘 전에 보낸 메일은 약간 다급했고 지나치게 정중했다. 평론가는 그녀의 메일을 모두 수신확인 했지만, 그녀는 그의 답변을 수신받지 못하고 있었다. 연락을 부탁하는 문자도 여러 번 보냈지만, 그에게서는 어떤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보낸 메일함 속에서 수신 불가의 원인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수십 번을 읽고 또 읽어도, 그녀는 작은 빌미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게 다 그놈의 똥 때문이야. 


  지원은 여전히 변기에 앉은 채로, 2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예술가의 똥> 위작 사건을 떠올렸다. 그것은 대기업 산하 문화재단이 운영하던 대형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가 벌인 사기극이었다. 그는 만조니의 대표작인 <예술가의 똥>을 위작으로 대체해 전시한 후, 문서를 조작해 작품 대여비와 보험비 명목으로 지급된 국가 지원금을 빼돌렸다. 문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타낸 국가 지원금의 상당 금액이 수석 큐레이터의 아파트 중도금과 외제차 구입비로 들어가는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와 ‘예술’과 ‘문화예술’ 기관의 실무자들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당시 전시 오프닝 행사에 참석했던 각 기관의 실무자들과 관리자들과 기관‘장’들의 해맑은 웃음이 SNS를 통해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자들을 모두 색출해 징계 혹은 경질조치 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난 여론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언론은 앞다투어 싸움을 부추겼고, 이리저리 낚인 대중들의 분노는 활활 타올랐다. 사람들은 SNS와 댓글로 불씨를 이리저리 옮겼다. 불씨는 혈세나 축내는 무식한 공무원에서 문화예술을 즐긴다고 자부하는 김치녀들로 옮겨붙더니, 현학적인 눈속임에 불과한 현대 미술과 콧대 높으신 아티스트들을 화형 시켰다. 정부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부랴부랴 “예술가 및 예술작품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노라 발표했다. 우리 국민들은 누가 예술가이고 무엇이 예술작품인지 명명백백 알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국민이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마음 놓고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전근대적 사고라는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내, 외부 전문인들로 꾸려진 TFT가 발족되었다. 특히, 이 모든 사태를 불러온 미술계가 “예술가 및 예술작품 인증제도”의 가장 강력한 규제 대상이었다. 


  하필 이런 때에, 4년 만의 개인전을 앞둔 지원은,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딱 한고비만 넘기면 됐다. 그녀는 이미 6개월 전, 예술인 증명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60페이지에 달하는 이력서와 활동 증빙자료와 창작 계획 등을 양식과 마감 날짜에 맞추어 제출했고, 석 달 전, 전시 작품 하나하나를 포트폴리오로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인한 50명의 미술 평론가들에게 보냈다. 3명의 평론가에게 인증서를 받아야 전시가 가능했는데, 평소 친분이 있던 2명의 평론가가 빠르게 인증서를 보내주어서 남은 1장의 인증서만 받아내면 됐다. 그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결국에는 무사히, 생애 첫 국가 공인 개인전을 열게 될 것이라고 위안하며 모든 양식과 절차와 마감을 꿋꿋이 견뎌왔다. 그런데 인증을 해주겠다던 평론가가 이 주 전부터 잠수를 타버렸다. 그가 이미 인증을 약속한 상황에서 다른 평론가에게 덜컥 인증서를 받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좁은 학계일수록 더욱 철저하게 지켜내는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마지막 인증서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변기에 앉아 그놈의 똥 타령이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4.

예술가의 똥_01[꾸미기]d.jpg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날 술이 너무 과했나 봐, 요즘 몸이 좀 허한가, 스트레스가 많긴 했지, 지쳐서 그럴 거야. 부부는 동어반복의 무한반복 끝에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상원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휴대폰 진동 소리에만 반응하던 그는 곧 노트북 타이핑 소리를 못 견뎌했고, 얼마 안 가 현관 초인종 소리를 힘들어했다. 휴대폰은 무음으로 바꾸고 노트북은 작업실에 갔다 두었다. 누가 찾아올 일은 드물었지만 혹 택배나 가스 검침이 불시에 초인종을 누를지 모를 일이니, 지원은 현관문에 ‘아이가 자고 있어요. 초인종 대신 노크해주세요’라고 써 붙였다.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한가로이 이메일을 보내던 그녀에게 상원이 빽, 소리를 지른 다음 날, 부부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벽은 물론이고 책상부터 책장, 심지어 모니터까지 하얀 진료실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의사가 흰 가운을 입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책상 위의 책과 문서들은 흐트러짐 없이 정갈했다. 남편과 함께 상담석에 앉은 지원은 고개를 숙여 상원의 잿빛 운동화를 내려다봤다. 흙이라도 좀 털고 오지. 바닥에 깔린 인조 대리석타일도 하얀색이었다. 


선택적 소음 과민 증후군, 일명 청각과민증. 청력 및 청신경 이상 소견 없음. 검이경 검사 결과 이상 소견 없음. 심리적 스트레스에 의한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음. 자가 관찰 요. 


  청각과민증, 그것이 귓구멍을 들여다보았다가 헤드폰을 씌었다가 음주 측정기 같은 기구를 들이밀었다가 콧구멍에 뾰족한 관을 쑤셔 넣었다가 바람을 불어댔다 하는 검사를 모두 마친 후, 하얗고 꼿꼿한 의사가 부부에게 내린 진단이었다. 분명 귀가 문제인데, 귀에는 문제가 없어 다행이라는 의사의 말은 뻔뻔하고 무신경했지만, 귀에 문제가 없는 이상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는 뻔뻔하고 무신경할지는 몰라도 무책임하지는 않았다. 의사는 잘 먹고 잘 쉬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 편히 지내면서 이삼 주 정도 지켜보라고 조언했다. 지원은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홍삼 드링크 두 박스를 주문했다. 활력을 채우는 붉은 에너지! 하루 한 병으로 지친 일상의 활력을 충전하세요! 

  그 와중에 그녀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휴대폰을 확인해야 했다. 상원이 있는 집에서는 훨씬 더 자주, 더 조급하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강제된 무음설정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상원은 그녀의 휴대폰 액정이 빛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빛나는 무음 앞에서, 손톱으로 고막을 긁어내리고 두개골을 해머드릴로 뚫는 소리를 떠올렸다. 그럼에도 휴대폰을 지원의 손에서 떼어낼 방법이 그에게는 없었다. 지원이 집에 들어오면 상원은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원은 상원이 있는 집에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그가 있는 집에서 그녀는 무음의 빛을 불안해했고, 그녀가 있는 집에서 그는 빛나는 무음을 두려워했다. 

  상원은 점점 더 깊숙이 서재에 틀어박혔다. 언제나 접이식 침대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 워 있었다. 주황색 귀마개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은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어둠에 쌓인 그의 몸이 무덤처럼 둥글게 떠올랐다. 그는 가만히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했다. 숨을 쉴 때마다 깊은 바다 속에 유폐되어 있던 소리를 들었다. 축축하게 차오른 숨이, 그를 고요한 심해로 데려다 놓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이불 속에서는 비린 침 냄새가 났다. 

  지원은 매일 아침 그의 식사를 식탁에 차려두고 작업실로 나갔다. 온종일 누워 지내는 상원이 걱정되었지만, 최대한 늦게 들어오고 최대한 빨리 나가는 것만이 당장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끼니마다 먹을 수 있도록 소분해 담은 묽은 죽 3그릇과 홍삼 드링크 1병. 그는 다 먹는 법이 없었고, 아예 먹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매일 죽을 쑤고 홍삼 드링크를 꺼내 두어야 마음이 놓였다. 

  상원으로부터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통보를 받은 그날도 그녀는 죽을 쑤고 있었다. 끓는 밥이 눌어붙지 않도록 젓다가 마지막에 계란 하나를 풀어 넣을 작정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계란을 꺼내려고 몸을 돌렸을 때 그가 식탁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체 언제부터 저기에 앉아 있었던 걸까. 잠시 멍하게 있던 그녀에게 상원이 죽, 하고 말하는 듯한 입모양을 해 보였다. 그제야 황급히 계란을 꺼내 풀어 넣고 잠시 휘젓다가 불을 껐다. 언제 나왔어? 몸은 좀 괜찮아? 조심스럽게 물으며 그의 앞에 앉았다. 고소한 계란 냄새가 그녀를 따라왔다. 그는 눈에 띠게 뾰족해져 있었다. 지원은 어딘지 그가 낯설게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지금, 여기에 있는 풍경이 어색해 보였다. 그것은 저예산 영화의 CG 효과처럼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 상원은 식탁 위로 시선을 떨어뜨린 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천천히 눈을 깜박이고 침을 삼켰다. 입술이 조금 열리더니 서늘한 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 거기에 가야겠어. 


5. 

  삼 주나 기다려온 전화 통화는 5분 만에 끝이 났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평론가는 지원이 보내준 작품 사진파일들은 확인해 보았으나, 작품을 jpg로 판단하는 것이 실체를 중시하는 자신의 소신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쁜 일이 많아 당신의 작업실을 방문하기 어렵다고 말한 다음, 인증서를 원하면 대표작품을 들고 자신의 연구실이나 집 근처로 찾아 와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 당장 약속 시간과 장소를 확정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신이 없으니 추후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럼요, 그러셔야죠. 

  평론가와의 짧은 통화 후, 지원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맘먹고 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 후 그녀는 거의 담배를 피지 않았다. 다시 담배를 찾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은색 완충포장재로 겹겹이 패킹된 전시작품들은 벌써 석 달 째 작업실 벽면에 기대어 있었다. 그 앞에 서서, 불을 붙이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눈앞의 작품들이 잠시 아득해졌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희뿌연 연기를 가득 채우려는 듯, 그녀는 천천히 작업실을 돌며 담배를 피웠다. 작업실은 입구를 기준으로 그와 그녀의 공간으로 나뉘었다. 가벽을 설치하거나 파티션을 세워둔 건 아니지만, 두 공간은 분명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사진 작업을 주로 하는 그녀의 공간에는 책상이 많았다. 컴퓨터 두 대와 모니터 4대가 놓인 긴 책상과 자료를 정리하거나 회의를 할 때 사용하는 6인용 테이블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벽마다 설치한 책장용 선반에는 책과 각종 자료들이 빽빽했다. 상원은 언제나 그녀의 공간을 사무실이라고 불렀다. 그의 자리는 빈틈이 없었다. 각기 다른 크기의 캔버스들이 켜켜이 기대어져 있는 벽면은 드로잉과 낙서는 물론이고 잡지에서 뜯어낸 사진과 음식점 전단지, 포스터와 엽서들로 어수선했다. 그곳에선 완성작들도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것들은 물감으로 덕지덕지 얼룩진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그의 자리에는 항상 시큼한 기름 냄새가 났다. 지원은 1년째 미완성 상태인 그의 그림 앞에 섰다. 담뱃불은 이미 필터에 닿을락 말락 했다.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였다. 그의 공간은 회갈색으로 바래있었다.

  그들은 대학 시절에도 같은 작업실을 썼다. 학교에서는 큰 방을 20명의 학생들이 나눠 써야 했는데, 그녀는 복학한 그와 같은 방을 배정 받았다. 그는 유난히 키가 크고 비쩍 말라서 눈에 띄었다. 하지만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저…… 불 좀…… 건물 담벼락에서 담배를 피던 그녀에게 그가 건넨 첫마디였다. 그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떨렸다. 그가 한 곳을 주시하고 있어도 그의 눈동자는 항상 미세하게 흔들렸는데,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면 그 흔들림이 더욱 심해진다는 사실을 그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는 집중하면 입술을 내미는 버릇이 있었다. 그럴 때면 입술 사이가 조금 벌어졌는데, 그 모습이 마치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선이 많았고 색이 적었다. 그는 나이프로 종이를 베듯 그림을 그렸다. 그가 인물을 그리면 모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그가 풍경을 그리면 그곳은 폐허가 되었다. 그의 그림은 정지해 있었지만 그림 속 대상은 언제나 조금 떨고 있었다. 아마도 상원의 흔들리는 눈동자 때문일 거라고 그녀는 늘 생각했다. 졸업 후 왕래가 없었던 그가 다시 지원 앞에 나타난 것은 4년 전, 그러니까 그녀의 개인전 오프닝에서였다. 유난히 큰 키에 비쩍 마른 몸은 여전했지만 그는 어쩐지 달라 보였다. 눈동자. 눈동자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그는 뒤풀이까지 참석해 많이 웃고 많이 떠들었다. 능글맞아졌다고나 할까, 밝아졌다고나 할까, 지원은 그가 그렇게 사교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이후 지인들의 전시가 있을 때마다 그는 항상 함께 가자고 연락을 해왔다.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녀는 정지한 눈동자에 익숙해졌고 흔들리던 눈동자를 잊었다. 

  지원은 미완의 그림을 바라보며 담배를 하나 더 피워 물었다. 그가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통보를 꺼내 놓을 때,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는지, 기억해 내고 싶었다. 그 몸을 하고 집을 나가겠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거긴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병동이야, 상원은 알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그가 대학 시절 살았던 고시원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말도 안 된다며 말렸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선언에 가까웠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눈을 찔렀다. 흔들렸었나. 분명 흔들렸을 거야. 하지만 마지막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도 그녀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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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 시끄러워 죽겠네.


  지원은 끌고 가던 캐리어의 손잡이를 눌러 바투 잡았다. 낡은 캐리어의 바퀴가 거칠고 요철이 많은 아스팔트 위에서 드륵드륵 갈리는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들고 가는 편이 낫지 싶었다. 오른손으로 캐리어를 바짝 들어 올리자 몸이 왼편으로 기울었다. 고작 20인치짜리 기내용 캐리어인데도 지원은 바로 들지 못했다. 작은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갸웃거리며 왼발 오른발 내디뎠다. 꼴이 꼭 마네키네코 같네, 신혼집을 꾸미면서 너랑 닮았다며 상원이 사온 마네키네코는 햇빛을 받으면 고개를 까딱거렸다. 집 나가는 남편의 짐 가방을 들어주는 아내의 꼬락서니가 어서 오세요 고양이라니, 지원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신촌역에서 백화점을 끼고 돌아 딱 한 블록 걸어 들어왔을 뿐인데, 새삼 풍경이 달랐다. 광장 같은 로터리와 8차선 대로가 쉴 새 없이 분주한 데 비해, 골목은 팔자 좋게 태평하기만 했다. 차 두 대쯤은 어찌어찌 마주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너비였지만 양옆으로 빈틈없이 늘어선 고만고만한 건물과 그 외벽에 날파리떼 마냥 들러붙어 있는 간판들에 눌려, 길은 태생보다 좁고 가늘어 보였다. 그늘진 골목을 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전신주에 매달린 채 이리저리 헝클어진 전선들이 조금 흔들렸다. 지원은 캐리어를 왼손에 바꿔 들며 상원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은 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야, 소리를 지를까 팩, 캐리어를 내팽개쳐 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다시 까딱까딱 상원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몇 개의 편의점과 노래클럽과 삼겹살집과 모텔과 24시간 해장국집과 치킨집들을 지나, 그가 멈춰 섰다. 불타는 곱창집 앞이었다. 


  여기야.


  상원의 시선은 곱창집 건물 4층 외벽에 매달려 있는 작은 돌출형 간판을 가리켰다. 


  [광성 고시원 333-4377 최신시설완비 신촌지역 최저가] 


  잠시 캐리어를 내려놓은 지원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상원의 눈빛을 좇아 한참이나 노려본 끝에야 겨우, 그녀도 고시원 간판을 찾아냈다. 그것은 찾아도 그만, 못 찾아도 그만이라는 듯 성의 없고 무심하게 매달려 있었고 얼기설기 교차한 전선에 가려 여러 조각으로 분할돼 보였다. 이런 데 고시원이라니, 먹고 마시고 놀다가 쉬라는 건가, 손으로 햇빛을 가린 채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 사방에 포진해 있는 압도적인 유혹들을 돌아보며 지원이 중얼거렸다. 그는 어느새 컴컴한 건물 입구 안으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와 달리, 상원은 정확하게 움직였다.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 4층 버튼을 누르고, 잠시 숨을 고르고, 총무실 방문을 두드렸다. 그의 움직임은 사전에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사람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총무실 문을 열고 부스스 나왔다. 빼꼼히 열린 문 사이로 퀴퀴한 곰팡내가 새어 나왔다. 남자는 삼선 슬리퍼에 제 발을 끼우며 멍한 눈으로 부부를 바라보았다. 무슨……, 아, 어제 전화……, 아, 이쪽으로……, 그런데 어느 분이……. 그의 흐릿한 질문에 지원은 말없이 상원을 바라봤다. 부부는 총무의 뒤를 차례로 쫓았다. 상원이 중간에 서고 지원이 캐리어를 든 채 뒤를 따랐다. 고시원 복도는 일렬종대로 걸어야 할 만큼 좁았다. 지원은 복도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방문의 간격으로 방의 크기를 짐작했다. 어림잡아 문 폭의 두 배 정도. 반복되는 수직선의 원근감 때문에 복도는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멀리서 들려온 자동차 경적이 아니었다면, 복도 끝에 나 있는 창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반쯤 열린 창문을 타고 햇빛이 부옇게 밀려들어 왔지만 눅눅한 어둠을 몰아내지는 못했다. 빛은 저곳과 이곳의 경계를 확인하고 사그라들 뿐이었다. 천장의 석면 패널과 모노륨 장판의 집성목 무늬와 규칙적인 방문의 배열이 이루는 수직과 수평의 교차가 결국 그를 가두고 말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촘촘한 격자가 수없이 겹쳐져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장막이 될 것만 같았다. 

  방은 옵션에 따라 원래 세 종류가 있는데 지금은 화장실 딸린 방이 모두 차서 없으니, 화장실은 없지만 창문이 있는 방과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방 중 선택해야 한다고 총무가 설명했다. 지원은 문득 건물 입구에서 보았던 간판을 떠올렸다. ‘최신설비완비 신촌지역최저가’ 최신설비와 최저가가 공존하고 있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이 이곳의 최신설비인지는 궁금해졌다. 화장실과 창문을 최신설비라고 하는 것이라면 화장실도 창문도 없는 방의 시간은 대체 어느 때에 멈춰있는 거지. 

  그녀는 만류했지만, 그는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방을 선택했다.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방은 화장실은 없지만 창문이 있는 방보다 5만원 쌌다. 총무가 라면과 김치를 제공하는 부엌과 용변과 샤워를 해결할 수 있는 화장실을 안내해주겠다고 했지만 상원은 차차 둘러보겠다며 입실을 서둘렀다. 뭐가 그리 급하냐는 지원의 타박에도 그는 대꾸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들어가게 될 방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체리목 시트지가 발린 싸구려 책상과 책상 밑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좁은 싱글 침대, 그리고 미니 냉장고 한 대가 전부였다. 군데군데 누렇게 바랜 종이 벽지는 모서리가 들떠 있었다. 상원은 더 볼 것도 없는 방 안에서 선채로 한참이나 눈을 떼지 않았다. 분명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지원은 그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얼핏 본 것 같았다. 

  방이 마음에 드시나 봐요. 한 달에 22만원인데 석 달 치를 한꺼번에 결제하시면 65만원에 해드려요. 

  무슨 헛소리야, 당신 같으면 이 따위 방이 마음에 들겠어? 석 달? 하루도 있기 싫은 방에서 석 달이나 있으라는 거야? 고작 만원 가지고 어디서 생색이야, 쏘아주고 싶은 마음을 차가운 곁눈질로 대신하고 지원은 최대한 사무적인 말투로 입실 절차를 물었다. 그녀는 상원을 방에 남겨두고 혼자서 총무실로 따라가 결제를 하고 간단한 입실 원서를 작성했다. 연락처에는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추가로 적어놓고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침대 위에 모로 누워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제자리를 찾은 사람처럼 편안하고 고요하게. 짐 가방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방으로 돌아온 지원이 캐리어를 열었다. “그만 가봐.” 그녀는 챙겨온 속옷과 간단한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책상에 딸린 선반에 올려두며 말을 삼켰다. 이딴 곳에 있겠다니, 이런 동굴 같은 곳이 최선이라는 거야? “내가 나중에 할게.” 나중에 언제? 이젠 나랑 잠시도 같이 있기가 싫다는 거야? 하고 뱉는 대신 500미리짜리 생수 두 병과 홍삼 드링크를 미니 냉장고에 넣었다.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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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평론가의 연구실은 자로 잰 듯 반듯했고 각이 잡혀 있었다. 그곳은 결벽과 질서와 직각의 공간이었다. 방금 칠한 듯 새하얀 벽에는 투명한 유리 선반이 붙박여 있었는데, 마주한 두 벽의 선반에는 크기별로 분류된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T자로 붙여놓은 책상은 반들반들 윤이 났다. 평론가는 창문 앞에 놓인 개인 책상에 앉아 지원을 맞았다. 그녀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고, 그와 눈을 마주치려 노력했다. 하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햇빛에 눈을 찌푸리지 않으려면 시선을 조금 낮춰야 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먼 데까지 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진심일 리 없는 그의 말에 그녀는 진심으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오늘에야말로! 인증서를 모두 갖추게 될 것이고, 마지막 고비를 넘을 것이었다. 생애 첫 국가 공인 개인전은 성황리에 열릴 것이고, 상원의 청각과민증도 곧 낫게 될 것이며 그러면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거라고, 그녀는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전날, 평론가는 대전의 대학 연구실로 오전 10시까지 찾아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 역시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통보였다. 그러나 인증서만 받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는 그녀의 믿음이 평론가의 무성의와 안하무인을 상쇄시켰다.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새벽부터 운전해 달려왔지만 그녀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지원은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어 작품을 꺼내놓았다. 미리부터 액자에 끼워 놓은 사진 작품은 긴 쪽의 길이가 1미터 남짓 되었다. 사진은 폐공장에 버려져 있던 낡은 인쇄 기계를 담고 있었다. 희뿌연 햇빛이 스며든 폐공장의 내부는 어쩐지 꿈처럼 아련했다. 그 잿빛 시간 속에서 붉게 녹슨 인쇄 기계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흐음, 평론가는 한숨 섞인 신음을 길게 내뱉었다. 그는 사진을 멀리서도 보았다가 몸을 숙여 코앞에서도 보았다가 했는데, 그때마다 눈을 가늘게 떴다가 크게 떴다가 했다. 여러 번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을 쉬었다. 그럴 때마다 지원도 주먹을 쥐었다가 깍지를 꼈다가 손톱을 쥐어뜯었다가 손바닥을 비벼 댔다가를 반복했다. 한숨은 쉬지 않았지만 마른입을 훑고 침을 삼켰다. 


  이거, 실제로 보니 물질성이 좀 약하군요. 


  지원은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물질성이라니…… 어떤…… 평론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창문 앞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오브제의 기념비적인 의미에 비해서 조각적인 스펙터클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좀 더 탈영토화된 장면이기를 바랐는데 말이죠. 

  그게 무슨…… 죄송하지만 저는 잘 이해가……

  아, 그러니까 그게 말하자면……


  그는 부르디외와 보드리야르와 데리다와 들뢰즈 등을 들먹이며, 이미지의 과잉공급과 욕구의 소비학적 측면과 계급의 아비투스와 공동체의 파롤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지원은 평론가가 폐공장의 인쇄기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거론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가 어떤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 눈을 들었다. 하지만 늦은 오전의 햇빛에 눈이 부셨고 그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기에 다시 시선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평론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들은 비눗방울처럼 연구실 안을 둥둥 떠다니다가 지원이 잡을라치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그녀는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아…… 감탄하고, 네…… 맞장구를 쳤다. 얼마나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던지 중간에는 조금 어지럽기까지 했다. 말이 길어질수록 그는 중간 중간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지원은 그의 목구멍에서 비누거품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곧 어지럽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법을 터득했고, 내내 일정한 리듬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렇군요…… 아…… 네……


  한 시간 여의 일장연설 끝에 평론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인증서를 써 주었다. 지원은 그가 작품을 인증하겠다는 것인지, 그녀의 헌신적인 끄덕임과 감탄사와 맞장구를 인증하겠다는 것인지 헷갈렸다. 헷갈렸지만 구태여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인증서는 인증한다는 사실만을 인증할 뿐이었다. 누가 인증했는가는 중요할지 몰라도 무엇이 인증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평론가가 내민 인증서를 받아들고 포장재와 작품을 대충 챙겨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제대로 사리지 못한 포장재들이 질질 끌리고 나풀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담배를 펴야 해, 담배를……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포장재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그 위에 액자를 조심성 없이 내려놓았다. 메고 있던 숄더백 안을 거칠게 뒤졌다. 담배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맥이 풀린 탓인지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고 잠시 휘청했다. 액자 유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바람에 일어난 나뭇잎이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왼손에 끼워진 인증서가 따라 팔락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오장육부가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몸이 둥실 떠올라 이리저리 나부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뱃멀미를 할 때처럼 메스꺼웠다.   

 드드드, 몸이 떨렸다. 전화였다. 숄더백에서 휴대폰을 꺼내 가까스로 받았다. 여보세요, 아 저 광성고시원인데요. 고시원 총무였다. 저기, 엊그제부터 남자 분이 계신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민원이 자꾸 들어와서요. 그게…… 제 귀에는 잘 안 들리긴 하는데…… 옆방 쓰시는 분들이 자꾸 불평을 해대서요.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으시고…… 그냥 따고 들어가 볼까 하다가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달라고 하셔서……. 그녀는 바로 올라가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허공에 대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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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원은 침대 위에 앉은 채로 벽에 기대어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굽은 등 위로 불거져 나온 척추가 곧 그를 관통할 것만 같았다. 그는 볼펜으로 벽지 위에 실오라기 같이 허약한 선을 신중히 그리고 있었다. 앞으로 쑥 내민 입술은 무언가 중얼거릴 때처럼 조금 벌어져 있었다. 그는 선 위에 선을 겹치고 선과 선을 얽었다. 그의 손이 지나간 자리가 구불구불 꿈틀대며 살아났다. 선들은 경계를 잠식하며 퍼져나갔다. 그것은 명암도 원근도 소멸시켰다. 다만, 엉키고 풀리고 다시 헝클어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대학시절, 그가 풍경을 그리면 그곳은 폐허가 되었다. 그녀는 그의 손이, 흔들리던 눈동자가, 폐허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경계는 모호했고 존재는 흐릿했으며 공간은 주름졌다. 

  열쇠로 방을 따준 총무의 뜨악한 표정을 뒤로 한 채 지원은 문을 닫았다. 흔들리고 있어. 그녀는 자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인지 방이 흔들리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확신했다. 슥슥, 선이 피어나는 소리가 바람처럼 귓가를 스쳤다. 지원은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슥슥슥슥슥슥…… 그녀는 그가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선을 지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수직과 수평, 직각과 결벽, 양식과 절차, 정답과 마감, 업무와 작업의 경계가 그의 손에서 지워지고 무너졌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밥과 예술과 똥과 예술과 잠과 밥과……슥슥……예술과……똥과……슥슥슥……예술……잠……슥슥슥슥슥……. 내내 메스꺼웠던 속이 편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순 잠이 쏟아졌다. 정확히는 몸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잠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침대 옆 좁은 바닥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곧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슥슥슥…… 흔들리는 요람에 몸을 맡긴 채, 슥. 




※ 게시판 크기가 전체 글을 한 번에 수용하지 못하여  (2)편으로 마지막 9장을 수록합니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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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로꼬로라이더

커트 보니것을 흠모해 담배를 배웠지만 잇몸 염증에 굴복해 금연했다. 예술은 믿지 않는데 어쩌다보니 예술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