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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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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1호
{누군가의 자전거}
예술가의 똥(2)

꼬로꼬로라이더  date. 2020.04.12

9.  

  지원은 늦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고 오전이면 다시 집을 나섰다. 작업실에서 조금만 더,를 반복하다가 동이 트고 나서야 집에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작업실은 여전히 그의 공간과 그녀의 공간으로 나뉘었다. 첫 국가공인 개인전은 무사히 열렸고 성황은 아니었지만 별일 없이 끝났다. 전시가 끝난 후에는 전시 보고서와 지원금 사용 내역서와 세금계산서를 제출해야 했다. 다음 분기에 계획 중인 활동을 위해서는 또다시 창작 지원금을 신청해야 했기에 업무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는 주로 그녀의 공간에서 양식에 맞춰 기획서와 지원서와 보고서를 작성하고 절차를 지켜 마감까지 그것들을 제출했다. 양식과 절차와 마감은 반복되었다. 그녀는 단지, 그 사이에서 담배를 많이 피웠다. 흐물흐물한 담배 연기를 따라 초점을 풀면, 수직과 수평과 직각의 세계가 아득해졌다. 세상은 여전히 비눗방울처럼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하고 맞장구를 치며 버텼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때는 그가 있는 고시원으로 갔다.

  상원의 방은 언제나 흔들렸다. 그의 손은 쉼 없이 선을 긋고 겹치고 얽었다. 그것들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흩어질 듯 모이며 꿈틀댔다. 선이 면으로 차오를라 치면, 지원은 도배장이를 불러 도배를 하고 침대 시트를 갈았다. 고시원 총무에게는 매달 30만원씩의 적지 않은 뒷돈을 찔러 주었다. 이후에는 그의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불평하던 옆방 사람들도 잠잠해졌다. 고시원 총무가 그들에게 얼마쯤 나눠준 것인지, 그들이 소리에 익숙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공용 냉장고에는 죽을 쑤어 넣어놓고, 개인 냉장고에는 물과 홍삼 드링크를 채워 넣었다. 그가 먼젓번 것을 다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새로 해간 것으로 채워 넣었다. 그녀는 가끔 상원의 손에서 피어나는 슥슥, 소리를 들으며 웅크린 채 잠을 잤다. 

  야속하게도,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밥을 먹으면 똥이 마렵다. 그는 고시원에 있고 그녀는 양식과 절차와 마감 중에 있다. 그는 청각 과민증이다. 그녀는 담배를 많이 피운다. 수평과 죽과 수직과 똥과 직각과 잠 사이에서 그는 선을 긋는다. 양식과 밥과 절차와 똥과 마감과 잠 사이에서 그녀는 사진을 찍는다. 그의 손은 공간을 흔들고 그녀는 흔들리는 공간 속에서 깊고 어두운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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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로꼬로라이더

커트 보니것을 흠모해 담배를 배웠지만 잇몸 염증에 굴복해 금연했다. 예술은 믿지 않는데 어쩌다보니 예술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