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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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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공동체와 예술}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시간과 장소를 사유하는 방법

최창희 _ 감성정책연구소  date. 2018.11.07

뮌스터조각프로젝트 ①



[공동체와 예술]의 첫 출항이다. 진짜 여행을 떠나보자! 목적지는 ‘2017 유럽 그랜드 아트 투어’1) 중 뮌스터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 10년에 한 번 세계적인 미술전시가 유럽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어 유럽 그랜드 아트 투어로 명명되는데, 그 중심에 바로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있다. 그 까닭은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10년에 한 번 개최되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특히 이번 2017 유럽 그랜드 아트투어에서 다수의 전문가 관람자들이 입을 모아 프로젝트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1977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한 프로젝트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적인 예술행사일 뿐만 아니라 도시 전역을 무대로 작품이 설치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대표 격으로 손꼽을 수 있다. 특히 공공미술 논의와 개념의 변화와 확장에서 동시대적으로 또는 선두에 선 것으로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좇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개최하고 있다. 개최 몇 회 만에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일본의 에치고츠마리(Echigo-Tsumaari) 아트 트리엔날레와 우리나라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가 그렇다. 이뿐만 아니라 10년에 한 번 개최하는 독특함을 비롯해 그 의미와 가치, 매회 같은 감독인 카스퍼 쾨니히(Kasprer König)가 기획을 한다는 점 등 눈여겨봐야 할 사항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뮌스터 도시에서 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개최하는 동기도 빠뜨릴 수 없는 내용이다. 2017년에 개최된 전시를 중심으로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들을 하나하나 탐구해보려고 하는데……. 그 깊이가 깊고 폭이 넓어 마음이 급해진다.



2017년 주제 ‘매혹적으로 늙은, 신나게 젊은’


2017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6월 10일부터 10월 1일까지 엘베엘미술관(LWL-Museum für Kunst und Kultur)을 중심으로 뮌스터 전역에서 개최되었다. ‘매혹적으로 늙은, 신나게 젊은(Enchantingly Old, Excitingly Young)’의 주제로 35명(팀)의 작가의 작품이 전통적 조각의 형태에서부터 디지털 설치, 비디오, 영상, 퍼포먼스까지 선보여 공공미술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제기한다. 또한 '퍼블릭 콜렉션(Pubic Collection)'이라는 제도를 두어 전시된 작품 중 일부는 뮌스터시에 영구설치 되기 때문에 2017년 전시작품과 함께 이전 프로젝트에서 소장된 39점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엘베엘미술관 바로 옆으로 학생들과 시민들이 애용하는 버스정류장은 바로 1987년에 설치된 데니스 아담스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건물 안쪽으로는 코기 타나카(Koki Tanaka)의 워크숍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함께 살 수 있는 방법(how to Live Together)”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문화와 세대로 구성된 참여자와 함께 9일 동안 진행한 워크숍을 영상 설치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함께’라는 의미 속에서 공공성과 공동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30년이 지나도록 공중(public)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늙은’ 작품과 새로운 형식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젊은’ 작품이 조우하도록 하는 것도 2017년의 주제인 ‘매혹적으로 늙은, 신나게 젊은’의 방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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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Dennis Adams, <Bus Shelter IV>, 1987. / Aluminium, wood, acrylic glass, two-way mirror glass, photographs, fluorescent tubes / 3 x 4.65 x 3.1 m / Installation view 2017. Photo: Hubertus Huvermann ©뮌스터조각프로젝트

(오른쪽) Koki Tanaka, <Provisional Studies: Workshop #7 How to Live Together and Sharing the Unknown>, / 2017 Action and workshpos, Installations of the video documentation in four rooms / Installation view 2017, photograph: Henning Rogge ©뮌스터조각프로젝트


뮌스터 도시 전역에 흩뿌려진 1977년도부터의 퍼블릭 콜렉션 작품과 2017년의 신작을 걸어 다니며 관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서는 자전거 투어를 제공한다. 친환경적이고 아날로그적 매체인 자전거를 타는 것과 함께 2017년도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였다. 바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인데 이 앱은 위치정보 서비스를 공유해서 사용자 위치에 가까운 작품을 찾아주고, 그 작품에 대한 설명도 제공해준다. 또한, 구글맵을 연동해주어서 길찾기도 가능하다. 그야말로 올드 미디어(old media)인 자전거로 매혹적으로, 영 미디어(young media)인 앱으로 신나게 조각프로젝트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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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조각프로젝트 지도, 애플리케이션 캡처 화면, 자전거(왼쪽부터 시계방향)



예술을 통해 역사와 미래를 사유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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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har Baumgarten, <Drei Irrlichter (Three Will-o’-the-Wisps)>, 1987 / Three 15 Watt lightbulbs; three iron cages / Installation view 2017. Photo: Hubertus Huvermann ©뮌스터조각프로젝트


한 손에는 지도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열어 뮌스터 도시를 헤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다. 뜻하지 않은 골목길에서 도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엘베엘미술관을 중심으로 반경 300m 이내로 작품들이 많이 설치되어있고 여기서 동선을 잡아 퍼블릭 콜렉션과 새로운 작품을 빠뜨리지 않고 보려고 찾아 헤맨다. 그중 로타 바움가르텐(Lothar Baumgarten)의 <Drei Irrlichter> 작품을 찾으려고 성 람베르티 성당(St. Lamberti Church) 주변을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겨우 앱을 통해 성당 종탑 위치의 조명이 설치된 것을 발견한다. 무슨 의미일까?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며 급한 마음에 다음 작품을 보러 발걸음을 이동한다. 100m도 지나지 않아 오래된 건물 앞에 줄을 길게 선 사람들을 발견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지도를 보니 알렉산드라 피리치(Alexandra Pirici) 작품이 위치한 구시청(Rathaus) 이다. 사람들을 따라 줄을 섰다. 내 뒤로도 몇 사람들이 줄을 더 늘어서 섰을 즈음 입구에서 안내하는 사람이 와서 주의를 준다. 작품을 보러 들어간 관람객이 나오면 그 수만큼 입장이 가능한데 관람객이 언제 나오는지 알 수 없으며 4~50분 정도 후면 종료되기 때문에 기다려도 작품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한다. 궁금증이 유발되며 10여 분 이상 기다리고 있는데 그사이에 기다리다 가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또 마찬가지로 그 안내자는 비슷한 설명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못 볼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강조하는데 그럴수록 기다리려는 사람은 내일 아침에 떠나기 때문에 꼭 봐야 한다고 간청한다. 안내자의 대답이 더욱 재미있다. “모두가 그렇게 얘기해요. 심지어 저녁에 뮌스터를 떠나기 때문에 꼭 보게 해달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20분을 조금 더 지나 겨우 순서가 되어 실내로 들어갔다. 홀 안쪽에 하나의 방을 가리키며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꽤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 있고 중앙에는 6명의 퍼포머가 공연을 하고 있다.


구시청에서 선보인 피리치의 작품 <Leaking Territories>는 제목처럼 6명의 퍼포머의 신체가 끊임없이 공간을 점유했다가 이동하고 또는 영역을 구축하고 파괴하기를 반복한다. 이따금씩 “Here we are”를 외치며 ‘지금, 여기’를 강조하며 과거 ‘그때, 거기’를 소환한다. 다양한 국적의 퍼포머들은 공간의 구축과 해체를 반복하고 또한 과거와 현재를 혼합시키며, 나아가 관객이 던지는 단어를 구글링(googling)하듯이 즉석에서 단어의 정의와 의미 및 연상되는 여러 장면들을 불러온다. 심지어 하이퍼텍스트(hypertext)처럼 단어는 링크되어 확장되기도 한다. 이 하이퍼텍스트는 1648년 역사적 사건도 소환한다. 바로 전시가 펼쳐지는 공간이 30년 종교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했던 ‘평화의 방’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전쟁이 종교전쟁이라기보다 영토전쟁이었음을 지적하며 현재의 난민 문제에까지 외연을 확장한다. 퍼포머의 춤은 그들이 쌓고 허무는 집합적 구축물과 경계선 등을 통해 장소-특정적(site-specific) 공간에서 조각이자 건축으로서 인간 신체 콜라주를 형성하고, 또한 살아있는 검색장치로서 여러 가지 미디어로 기능한다. 바움가르텐의 세 개의 조명과 세 개의 철창으로 구성된 작품도 바로 종교전쟁 당시 공개처형을 상징한다. 1536년에 발생한 뮌스터 교회의 공개처형의 잔혹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소환하면서 바움가르텐 작가 역시 현재에도 발생되는 중동국가의 종교적 갈등으로 외화된 민족들 간의 영토 전쟁을 연결 짓는다.


이렇게 공공미술은 작품이 위치한 역사적 ‘장소-특정성’에 의미를 더하며 나아가 그 의미를 현재화한다. 1987년의 조형물의 작품에서도 2017년의 퍼포먼스에서도 작품의 표현방식은 달라도 장소를 사유하는 방법은 유사하다. 그리고 그 장소의 역사성을 흘러간 과거로만 이해하지 않고 현재의 시간까지 연결한다. 4~5백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역사의 문제, 인간의 문제를 직시한다. 종교분쟁으로 볼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은 영토의 문제이며 이를 포함한 경제 메커니즘과 연결됨을 환기시킨다. 작품이 하나의 링크가 되어 지금의 여기와 그때의 거기, 그리고 중동과 전 세계 곳곳의 난민 문제들을 현재화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함께’ 사는 공동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와 현재, 도시와 장소를 고민하는 ‘매혹적으로 늙은, 신나게 젊은’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의 진짜 모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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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ra Pirici, <Leaking Territories>, 2017, photograph: Henning Rogge

Performers : Beniamin Boar, Liliana Ferri De Guyenro, Montserrat Gardó Castillo, Susanne Grau, Susanne Griem, Jared Marks, Rolando Matsangos, Luísa Marinho Saraiva, Fang-Yu Shen, Tyshea Lashaune Suggs, Pia Alena Wagner, Andy Zondag ©뮌스터조각프로젝트



* 다음 편에 이어서 베스트팔렌조약을 체결했던 뮌스터 도시에서 조각프로젝트를 개최하게 된 동기와 뮌스터조각프로젝트를 통해 도시가 공공성과 공동체성을 사유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겠다.





1) 유럽 그랜드 아트투어는 2년에 한번 개최되는 베니스비엔날레( 57th Venice Biennale, 2017. 5. 13 ~ 11. 26)와 5년에 한번 개최되는 카셀도큐멘타 ( document a 14, 2017. 4. 8 ~ 7. 16(그리스 아테네)/6.10~9.17(카셀)), 그리고 10년에 한번 개최되는 뮌스터조각프로젝트 (Skulptur Projekte Münster 2017, 2017. 6. 10 ~ 10. 1) 가 대표적이다. 이외 매해 개최되는 바젤아트페어( The 48th edition of Art Basel in Basel , 2017. 6. 14 ~ 18), 2년에 한번 개최되는 프랑스 리옹비엔날레 (14th Lyon Biennale, 2017. 9. 20 ~ 12. 31), 터키의 이스탄불비엔날레 (15th Istanbul Biennial, 2017. 9. 16 ~ 11. 12)  등도 포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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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 _ 감성정책연구소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를 운영. 그러나 박사논문 작성 핑계로 모든게 엉망진창이다. 빨간씨는 대학 시절 혁명을 꿈꾸며 사용했던 필명 주해(朱海)에서 파생된 닉네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서 예술적 방법을 탐구하며, 돈보다 멋진 것을 추구하고 싶은 낭만적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