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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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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공동체와 예술}
예술이 거주하는 마을

최창희_감성정책연구소 소장  date. 2019.02.26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 책은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 빵을 굽는 장인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이자 빵 굽는 장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천연 효모와 천연 누룩으로 빵을 만들며 균을 연구하면서 균의 생태계처럼 “사회를 발효” 시키고자 한다. 마을에서 생산된 것으로 빵을 만들어 소비하게 만드는 “빵으로 지역 순환 만들기”를 실천하며, 주 4일만 영업하고 일 년에 한 달은 장기휴가를 가며 ‘이윤’도 추구하지 않는다. 이 일본 변방의 시골빵집은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찾아가며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불현 듯 떠오른 이 책은 최근에 공공미술 또는 커뮤니티아트라는 이름으로 실험되고 있는 여러 예술적 활동들과 많이 닮아 있다. 문턱을 낮추고 미술관 밖, 공공 공간으로 이동한 미술은 보다 실천적인 운동의 모습으로 지역의 공동체,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로 들어간 예술, ‘별별 미술마을’의 예술과 노동


한 일 년 정도 전 농민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었다. “농촌 일상이 바로 작품”, 그리고 “내가 바로 주인공”이라는 제목으로 경북 영천 ‘별별 미술마을’이 소개되었다. 특히 사용하지 않는 마을회관을 마을사 박물관으로 탈바꿈 시킨 <우리 동네 박물관>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었다. 마을주민의 오래된 이야기가 마을의 역사가 되는 이 박물관은 관람객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자주 찾는 공간이다. 농업인의 날을 맞아 예술을 낯설게 받아들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주체들이 거주하는 특별한 농업 마을을 소개한 것이다. 이렇게 별스러운 ‘별별 미술마을’은 2011년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조성된 곳으로서 고즈넉한 농촌마을에 ‘다양한 작품’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공공미술이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5년도 ~ 2006년도 정도이다. 건축물미술작품설치제도의 개선과 미술관 중심의 제도권 미술에 대한 대안으로 모색되기 시작한 공공미술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아트인시티’ 사업과 서울시의 ‘도시갤러리’ 사업을 중심으로 미술계의 큰 화두로 자리 잡았다. 미술관 밖으로의 예술의 여행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미술관 안의 작품들이 공공의 장소로 이동했을 때, 예술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상당한 어려운 질문이었으며 그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난처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2011년도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사업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별스러운 점들이 몇몇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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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신병기, <마을의 수호와 안녕을 위한…>, 도자기벽화, 2700×150cm, 2011 ©마을미술프로젝트

우: 김석진, <풍영정 복숭아 꽃 열리다>, 거창석, 4500cm ©마을미술프로젝트


우리나라 공공미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별한 개념도 맥락도 없는 조형물과 벽화들이 무분별하게 설치되어 시각적 공해와 심지어 산업폐기물을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는 중에도 유사한 일들이 계속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천의 ‘별별 미술마을’은 이 와는 다르게 의미 있는 시도들을 여러 가지 보여주고 있다. 우선 공공미술의 가장 흔한 예인 벽화도 페인팅이 아닌 테라코타, 도자기, 타일, 스테인리스 구슬 등 보다 영구적인 형식이 사용되었으며, 마을의 본래의 풍경과 조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실제 탁본이나 프로타주 놀이를 할 수 있는 탁본 벽화인 <마을의 수호와 안녕을 위한…>(신병기, 도자기벽화, 2,700×150cm)은 마을에 소재한 전통문화유산과 그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또한 헐리우드에서 볼 법한 핸드프린팅이 마을의 경로당 벽면에 설치된 <위대한 손>(이태호, 청동, 스테인리스 스틸, 가변크기)은 오랜 세월 마을과 함께한 어르신들의 손을 청동으로 찍어낸 것이다. 실제 살아있는 마을의 역사로서 노동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 있는 어르신들의 손은 그야말로 ‘위대한 손’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의미 있는 벽화와 복숭아 꽃모양이 음각 채색된 산책길, 마을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조형물들이 마을 곳곳에 그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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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손몽주, <새장의 새>, 저압호스, 철근, 1500×500×500cm, 2011 ©마을미술프로젝트

             우: 장영철, <바람의 카페>, 대나무, 1000×1100×400cm, 2011 ©마을미술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빈집프로젝트에 있다. 전형적인 시골 농촌 마을인 이곳은 고령화와 함께 그에 따른 공동화 현상으로 빈집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침체된 마을 분위기와 안전 문제까지 야기하는 이러한 빈집들이 실제로 살아 기능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별별 미술마을’의 인포메이션센터이자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바람의 카페> 1) (장영철, 대나무 외, 1,000×1,100×400cm), 주민들이 직접 만든 규방공예작품과 전통아트상품 등이 판매되고 전시되는 <알록달록 만물상>이 내부에 있고, 외부는 손몽주 작가의 작품으로 외관을 구축한 <새장의 새>(손몽주, 저압호스, 철근, 1,500×500×500cm)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앞에 언급한 ‘별별 미술마을’의 구심점이 되는 <우리 동네 박물관>은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된 집이어서 안전진단과 보강 등으로 건물의 내구성을 보완하였으며, 동시에 외관은 대나무와 호스 등으로 건물의 조형성을 덧입혀 작품이자 실제 작동하는 카페, 박물관, 전시관이자 아트상품판매장 등으로 재탄생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 프로젝트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공식적으로는 당시 미술감독은 봄이면 상춘곡의 한 장면 마냥 복숭화꽃 봄나들이에, 여름이면 농활을 보내면서 영천으로 유희를 떠난다. 또한 영천의 주민들은 서울이고 대전이고 그 친분으로 전시나들이로 초청되어 당시 미술감독과 작가들과 여전히 연애 중이다. 화룡정점은 2015년에 마을기업이 탄생하였다. 별별 미술마을을 보고자 먼 길 온 손님들이 변변히 먹거리 하나 대접하지 못함이 미안했는지 ‘가래실 포장마차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별별포차를 운영한다. 여러 가지 먹거리와 함께 마을의 농산물도 전시 판매를 하는 ‘별별포차’ 옆에는 겨울이면 마을기업에서 직접 만든 전통 썰매를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을기업과 마을 주민들은 한 마음으로 ‘별별 미술마을’을 운영하고 관리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업그레이드도 한다. 이러한 미술마을은 단순히 보여지는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마을의 주민들도 그 예술의 주인공이자 예술의 주체, 삶의 주체로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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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로마을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 , 작가: 정현영, 참여: 거로마을 주민 등 66명, 기획: 문화공간 양, 664*91cm, 타일, 2013-14



삶의 이야기가 있는 벽화 : 제주도 거로마을


제주도 화북에도 이야기가 있는 벽화가 하나 있다. 그리고 그 벽화를 중심으로 화북 거로마을에는 예술이 함께 거주한다. 마을에는 오래도록 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퐁낭(팽나무의 제주어)이 있는 당충대가 있는데, 도로공사 등의 공간정비로 둘레석이 생기면서 본래의 분위기와 풍토 모두가 사라져 버렸다. 이 퐁낭 바로 앞에 위치한 문화공간 양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제주의 풍경과 거로마을의 삶과 이야기가 있는 벽화를 제작하였다. 당충대 모자이크 벽화 <삶의 빛>(정현영 외 66명, 타일 외)을 제작하고 설치하면서 다시 퐁낭 아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벽화에도 그들의 삶과 이야기가 함께 녹아져 있다. 이 벽화뿐만이 아니다. 문화공간 양은 거로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모으고 기록한다. 마을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는 마을지도를 제작하고, 마을의 어르신과 함께 곳곳을 다니면서 마을의 오래된 풍경과 이야기를 수집한다. 저녁에는 주부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전통침선을 함께하고 주말에는 동화책 등을 만들기 위해 동네 꼬마들이 찾아온다.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 예술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마을 주민들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고, 서울의 유명대학 교수가 특강을 하는 장소에 마을 부녀회장님이 감물 염색 강의를 하시고 마을 어르신이 거로마을 옛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일상과 예술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거로마을 주민들에게는 예술이 멀리 있지도 예술가가 낯설지도 않다.



예술과 노동의 재발견


진정한 예술의 추구로서 삶과 분리하고자 했던 예술은 ‘순수예술지상주의’와 상업주의 예술이라는 모순에 봉착했다. 순수예술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공공미술은 여러 난관 속에서 다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 만났다. 공공장소에서의 예술의 문제와 일상과 함께하는 예술의 실천을 질문하자, 예술과 기술, 예술과 노동, 예술과 삶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온 것이다. 

공공미술의 성공사례로 언급되는 몇몇 프로젝트는 관광산업 모델로도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된 환경 속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회문제가 발생되기도 하였으며, 여전히 예술과 그 예술마을은 그 삶과 분리된 채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모순이 발생되었다. 작년 서울 이화동 벽화골목은 큰 몸살을 앓았다. 연일 북적거리는 관광객들의 방문에 견디다 못해 주민들은 벽화를 훼손하였다. 그리고 2017년 2월 서울중앙지법은 공동재물손괴 혐의로 2,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는데, 이는 우리의 공공미술의 민낯이다.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건물을 보수하고 도로를 닦는 예술가의 노동의 산물과 그것과 함께 작품이 되는 마을 주민들의 노동의 흔적과 삶의 이야기 속에서 어느 것이 예술이고 어느 것이 노동인지, 무엇이 삶이고 또 무엇이 예술인지 구분한다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

이윤을 실천하지 않고 끊임없이 좋은 먹거리를 위해 천연균을 연구하고 지역과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마을의 생산되는 밀을 직접 제분해서 빵을 만드는 제빵사는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그 일본의 작은 마을, 가쓰야마는 자신의 수공예에 자긍심을 느끼는 장인들의 고장이라고 한다. 예술과 기술이 한 몸이었던 오래전 그때는 장인은 노동자, 기술자였으며 또한 예술가였다. 삶과 예술이 하나인 곳. 예술과 노동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마을. 프랑스 철학자의 테제처럼 예술이 삶이되고, 삶이 예술이 되는 그곳에서 진정한 예술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공동체로 스며들어 공동체와 함께 하는 예술의 실천 속에 예술뿐만 아니라 본래 노동의 가치, 우리의 삶의 가치가 봄날의 새순처럼 돋아날 것이다.



 1) <바람의 카페>는 5년 무상임대기간이 만료되어 현재 철거되었으며, 카페의 일부 기능은 ‘별별포차’가 이어서 운영하고 있다.



* 이 글은 월간미술 2017년 5월호에 수록된 글을 일부 수정하여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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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_감성정책연구소 소장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를 운영. 그러나 박사논문 작성 핑계로 모든게 엉망진창이다. 빨간씨는 대학 시절 혁명을 꿈꾸며 사용했던 필명 주해(朱海)에서 파생된 닉네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서 예술적 방법을 탐구하며, 돈보다 멋진 것을 추구하고 싶은 낭만적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