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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놀이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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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위대한 놀이의 탄생}
쓸모없는 놀이는 없다

김다빈 _ 자유기고가  date. 2018.11.07

프롤로그



“즐거움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는다.”


스티븐 존슨 작가는 저서 『원더랜드(Wonder Land)』를 통해 장난과 유희가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오락거리라고 폄하하는 많은 이들에게 “위대한 아이디어와 미래를 예견하는 발명품은 이러한 장난과 유희로부터 나온다”고 일침을 놓는다. 이런 그의 말을 증명하듯, 2016년 7월 증강현실(AR) 기술이 장착된 포켓몬고 게임이 출시되어 현실세계에서도 포켓몬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 혁신적인 게임은 2014년 포켓몬 컴퍼니와 구글의 만우절 농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장난으로 만든 동영상이 전 세계의 포켓몬 팬들의 마음을 자극시켰고, 즐거운 상상 속 판타지는 곧 실현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놀이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가거나 그네를 타는 것만으로도 광활한 바다를 항해하는 해적 선장이 되고, 한 마리의 용맹한 독수리가 되었다. 쨍한 날에는 나뭇가지에 물을 묻혀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이야기를 붙인다. 마치 동굴 암벽에 기록된 고대시대 동굴벽화처럼. 그 당시에는 누구나 호기로운 탐험가가 되고, 괴짜 과학자가 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러가 된다. 놀이 안에서 끊임없이 상상하고, 상상의 규칙들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무언가를 창조해냈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 ‘나’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실제로 세상에 많은 것들이 놀이의 법칙을 따르고 있으며,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놀이의 양식은 제법 달라지고 있다. 소비자는 단순히 문화를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주체가 된다. 이 변화에 대해서는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대중화가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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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1일 방영된 《무한도전》 285회 ‘하하vs홍철’.

약 3,500여 명의 관객들과 함께 대결을 펼치고 있는 무한도전팀 (출처 : http://www.imbc.com/)


필자는 아직도 2012년의 《무한도전》이 기억에 남는다. 동갑내기 친구였던 하하와 노홍철은 언제나 투닥거렸고, 김태호 PD와 전 국민이 합세하여(?) 이들의 싸움을 부추겼다. 이 프로젝트는 관객 사전투표로 대결 종목을 정했고, 2012년 1월 19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본경기를 보기 위해 3,500여 명의 관객이 모였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관객들은 관중석을 이동하며 대결의 우승자를 투표하였고, 최종 10라운드까지 생존한 관객에게는 어마어마한 상품이 주어졌다. 사실 이 특집 외에도 《무한도전》은 모든 멤버들에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서로가 경쟁하며 미션을 해결하는 ‘빅게임’을 통해 보는 재미와 시사적인 정보를 제공했으며, 관객과 함께하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냈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 프로그램이다.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아쉽다.)


게임이 아닌 것을 게임화하고, 게임의 재미요소를 가미하여 교육적 목적을 높이거나 다른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을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고 한다. 위에서 설명한 《무한도전》 사례에서도 보여지 듯 게이미피케이션은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TV 매체, 소셜미디어, 교육, 마케팅, 기업, 스포츠, 문화예술 등 많은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공연계에서 인기를 몰고 있는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er)’은 관객을 공연의 한 장면으로 초대하기도 하고, 배우와 관객이 놀이하듯이 공연을 이끌어가며, 관객의 참여가 공연을 좌지우지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관객들이 직접 헤드폰을 쓰고 대학로를 걸으며 공연에 참여하는 <로드씨어터 대학로>, 1인 관객이 극장을 여행하는 <천사 - 유보된 제목>, 관객이 극장 뒤 백스테이지에 침투해 미완의 공연을 완성하는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등이 ‘이머시브 연극’의 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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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천사 – 유보된 제목> 보도 사진 (사진 이강물 ⓒ남산예술센터), <로드씨어터 대학로2> 보도 사진 (출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게이미피케이션은 효과적이다. 교육 커리큘럼에 명확한 목표와 규칙, 시간, 보상체계, 피드백과 레벨 등 게임요소를 접목시키면 단시간에 학생들이 몰입하여 지식을 몸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주로 많이 활용하는 방식은 보드게임을 통해 배우고, 학생들이 직접 보드게임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사실 보드게임의 세계로 들어오면 깜짝 놀랄 정도로 모든 연령에 맞춰 상당히 다양한 장르와 테마의 유용한 게임들이 많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타인과의 협력과 전략을 통해 최고의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시타델>, 농부들에게 쉽지 않던 17세기에 농장을 가꿔야 하는 <아그리콜라>, 굴곡진 삶을 잘 살아내야 하는 <인생게임>과 같은 보드게임은 모두 굉장히 교육적이면서도 즐겁다.


방탈출이 유행하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 아닐까? 온라인 게임으로 시작된 방탈출은 최근 몇 년 사이 오프라인 카페의 형태로 국내에만 200개가 넘는 지점이 생겼다. 업체마다 다양한 장르와 스토리로 꾸며진 오프라인 방탈출 카페는 플레이어가 60분 동안 방에 들어가 각종 미션을 해결하여 방을 탈출해야 하는 신종 게임이다. 방탈출이 인기를 몰면서 이러한 콘텐츠는 보드게임, VR, 애플리케이션 등 새로운 콘텐츠로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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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테마의 오프라인 방탈출 (출처 : 셜록홈즈 방탈출 게임: SHERLOCK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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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 한 VR방탈출 - The Ruins: VR Escape the Room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sy3BJZbRfOs)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루덴스(homo ludens)를 통해 유희가 문화 속에서 발생한다는 기존의 견해를 역전시킨다. 그가 주장하는 문화는 “유희되는 것이며 유희 속에서 유희로서 발달”하는 것이다. 이런 놀이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필자는 ‘위대한 놀이의 탄생’ 코너에서 다양한 놀이의 쓸모와 위대한 놀이의 서사들에 주목할 예정이다. 이번 프롤로그에서 소개한 다양한 콘텐츠들과 함께 문화예술과 기술에 덧입혀진 놀이를, 때로는 집요하게, 때로는 심드렁하게 기록 할 것이다. 이 코너에서는 놀이의 탄생 과정은 물론 때에 따라서 창조주의 인터뷰와 직접 놀이를 체험하는 플레이어의 리뷰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위대한 놀이의 여정을 앞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

 프로필이미지

김다빈 _ 자유기고가

평범한, 보통의 무언가도 특별하다고 생각하기에, 곳곳에 묻어 있는 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를 수집한다. 이토록 보통의 나도 유의미하다고 믿으며, 문화예술의 힘을 빌려 세상을 유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