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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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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나비와 깃털 - 존재의 가벼움

박재은_자유기고가  date. 2018.11.07

작가 최기정 1) 은 아크릴판에 스크래치를 내서 화면을 만든다. 최기정의 화면에는 깃털과 나비가 등장한다. 나비와 깃털은 공기만큼이나 가볍다. 그리고 연약하다. 그 연약함은 작은 충격이나 완력에도 무기력하게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 우리의 세계에 비하면 인간이란 존재 역시 깃털만큼이나 가볍고 유한한 존재이다. 그 유한한 존재, 존재가 맞물려,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모든 것이 무상하지만, 깃털과도 같은 작은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온 세상인 것처럼 느끼며 살아간다. 아주 작은 충돌, 갈등, 부딪힘에도 우리는 굉장히 큰 고통을 느끼고, 커다란 불편을 느낀다. 타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도 우리의 내면에서는 수많은 파동이 스치고 지나간다.


전통회화에서 나비를 자주 그린 이는 남계우 2) 였다. 조선 말기의 문인으로 나비를 너무 많이 그린 나머지 그의 별명은 남나비로 불렸다. 남계우의 나비는 겉은 화려하지만 스러져가는 조선 말기 상황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었다. 3) 화조화에서 나비는 장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장수를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게, 나비는 오랜 시간을 상징하기에는 너무나 가변적인 존재이다. 이곳에 앉을 것만 같던 나비는 금세 다른 꽃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나비의 속성은 너무나 찰나적이다. 우리의 인생도 영겁의 시간에 비하면, 나비의 생처럼 찰나적이다. 화조화에서 나비는 곧잘 꽃과 함께 그려져 그 화려함을 더했다. 최기정의 나비는 깃털과 함께이다. 하나일 때도 가벼움을 느끼게 하는 나비가 깃털이라는 미약한 존재와 함께 있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이처럼 유약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천재지변, 전쟁, 기아, 환경오염 등등에 무기력한 것은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해당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의 나비, 하나의 깃털과 다르지 않다. 장자는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 나와 物이 경계가 없다. 내가 나비이고, 나비가 나이다. 物我一體의 경지이다. 고려 시대 이규보가 쓴 「슬견설蝨犬說」 에서 개와 이의 죽음을 논한다. 슬견설에 의하면 개와 이의 죽음을 같다고 보고 있다. 사람들이 애착하는 개와 혐오하는 이의 죽음이 같다니? 개의 존재가 크고, 이의 존재가 미약한 것은 인간이 정한 우열일 뿐이다.


꿈에서 나비가 된 장자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더 소중한 것도, 더 미천한 것도 없는 세상. 우열을 가리고, 상하 질서를 세우는 것은 인간의 질서이다. 생명체들도 질서를 세우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 공간에서 보면 모두 티끌보다 작은 존재이다. 세상은 파도가 밀려오고, 물러가듯이 쉼 없이 변화할 뿐이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하이데거4)는 《존재와 시간》에서 죽음에 관하여 ”남겨두고 떠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것을 남겨두고 떠날 존재이다. 나비는 머무는 순간 찰나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노란나비 한 마리와 꽃은 봄날의 싱그러움과 생명력을 나타낸다. 그러나, 봄날은 찰나적이다. 곧 더운 여름이 오고, 폭우와 폭염이 지속될 것이다. 지리한 여름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반짝이는 파란 하늘을 잠시나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한 첫눈을 볼 수 있는 겨울날이 올 것이다. 최기정은 찰나적인 나비를 역시 가벼운 사물인 깃털과 함께 등장시켜, 우리 존재의 무상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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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계우(南啓宇) <화접도(花蝶圖)>, 19세기, 비단에 채색, 27×27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1) 최기정 – 한남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블로그 http//blog.daum.net/choi7755 참조.

2) 남계우 - 조선 후기의 화가. 화재(畵才)가 뛰어났으며, 나비 그림을 잘 그려 ‘남호접(南胡蝶)’으로 불릴 정도였다. 나비와의 조화를 위하여 각종 화초를 그렸는데,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사생적(寫生的) 화풍을 나타냈다. -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3) 백인산,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 . 다섯수레, p.53. 참조.

4) 하이데거 - 독일의 실존철학자. 주요 저서는 《존재와 시간》이다. 그가 실존사상의 대표자로 간주된 것은, 이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 부분 때문이다. 불안·무(無)·죽음·양심·결의·퇴락(頹落) 등 실존에 관계되는 여러 양태가 매우 조직적·포괄적으로 논술되었다. -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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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_자유기고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경영을 전공하였다.
전시기획을 다루는 큐레이터에 호기심을 느끼고 진로를 정했지만, 역량 부족이다. 옛 그림을 좋아하고, 옛 그림과 현대미술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흥미롭다. 그림과 마음의 연관관계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