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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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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어락도(魚樂圖) - 물고기그림과 즐거움

박재은_자유기고가  date. 2018.12.22

전통회화에서 물고기 그림을 어해도(魚蟹圖)라 부른다. 어락도(魚樂圖)는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노는 그림을 말한다. 헤엄치며 노는 그림은 '유어도(遊魚圖)', 잉어가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그림은 '약리도(躍鯉圖)', 물고기가 짝을 지어 희롱하는 그림은 '희어도(戱魚圖)'라고 한다. 1 ) 옛 그림에서 잉어는 과거급제를 의미하였다. 과거급제에 대한 염원을 해를 향해 뛰어오르는 물고기에 빗대어 표현한 그림들이 많았다. 출세에 대한 염원을 뛰어오르는 잉어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빛을 향해 꿈꾸는 물고기는 밝은 해를 보고자 한다. 물고기는 대개 회화에서뿐 아니라 꿈을 통한 상징에서도 생명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힘찬 물줄기를 가로지르며 튀어 오르는 잉어를 꿈에서 보면 태몽으로 해석될 정도로 물고기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 양수도 그러하듯이 물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길러낸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박제가 2) 의 어락도를 보면 한가로운 오후의 어느 날,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포착하였다. 물결은 잔잔하고 평화롭다. 여기서 노니는 물고기가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를 두고 장자와 혜시(惠施)가 이야기를 나누는 일화도 있다. 노니는 물고기가 즐겁다고 말한 장자는 물고기의 여유롭고 한가한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다. 결국 장자 자신의 즐거움이 물고기의 즐거움으로 투사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어느 날 물속을 유유히 돌아다니는 물고기의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순간 내가 물고기인지 물고기가 나인지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된 듯 물속을 헤엄치는 기분을 느꼈다. 이러한 기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물고기에 본인의 모습을 투영해 보면서 이 작업이 시작되었다. (김민주 작업 노트)

 

현대미술작가 김민주 3) 물속에서 노는 물고기를 보고 순간 내가 물고기인지 물고기가 나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장자의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경험 한 것일까? 특별한 경험을 한 작가는 어락도로 자신의 경험을 작업으로 옮겼다. 김민주의 어락도는 확실히 즐겁다. 사람이기도 하고 물고기이기도 한 모습은 위트가 넘친다. 연꽃 사이를 헤엄치는 사람 물고기는 진리를 탐구하는 작가 자신을 투영했다고 생각한다. 전통회화에서 감지되는 즐거움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물먹는 병아리, 노는 병아리, 조는 개, 어미 개에 매달려 젖을 먹는 강아지, 오이를 들고 가는 고슴도치... 화조화를 비롯한 동식물 그림은 주로 일상의 평화로운 한때를 표현한 것이 많다. 동식물 그림은 주로 먹거나, 자거나, 장난치는 모습들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포착한 경우이다. 동물들의 장난기 어린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의 소중함과 여유를 발견하게 된다. 전통회화에서 동식물에 안락한 여유를 투영하였다면, 현대미술에서 전통은 위트, 장난 같은 웃음들로 여전히 즐거운 분위기가 녹아들어 있다. 김민주의 경우도 상반신은 물고기, 하반신은 나체인 사람이 뒤태만 보이고 비스듬히 반쯤 누워있는 장면이라든지, '풍덩'하고 물속에 점프하는 사람의 '엉덩이' 등을 통해 유머가 다분히 표현된다. 옛사람들의 즐거움이 동식물들을 통해 표현된 것과 같이 동시대 미술에서 전통이 소환될 때 즐거움과 유머는 늘 따라다니는 요소이다.


박제가 어락도.jpg


TMI

1 윤열수 <서민의 삶과 꿈, 그림으로 만나다>, 다섯수레, p. 65. 참조

2. 박제가 - 18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실학자. 양반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전통적인 교육을 받기는 했으나 신분적인 제약으로 사회적인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반대하는 선진적인 실학사상을 전개하였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3. 김민주 - 서울대학교 동양화 학사, 석사.

본문에 언급된 어락도는 2007년 갤러리 라메르 전시 '어락도(魚樂圖)'에 있는 이미지이다.


 프로필이미지

박재은_자유기고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경영을 전공하였다.
전시기획을 다루는 큐레이터에 호기심을 느끼고 진로를 정했지만, 역량 부족이다. 옛 그림을 좋아하고, 옛 그림과 현대미술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흥미롭다. 그림과 마음의 연관관계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