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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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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생활의 미 - 접힘과 펼침

박재은_자유기고가  date. 2019.03.24

서양에서는 신기하게도 바구니를 벽에 걸어 놓는다는 글을 한 미술잡지에서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이 서구에서는 장식용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우리의 생활과 장식, 문화와 밀접하게 호흡하고 있는 미술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어졌다. 그것은 병풍, 두루마리, 부채, 밥상 등의 형태로 옛 사람들과 호흡했던 생활의 미(美)이다. 

병풍과 두루마리, 부채, 밥상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접힘과 펼침의 형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병풍은 본래 바람을 막거나 공간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었다. 1 한국만큼 병풍그림의 전통을 고집하고 발전시킨 나라는 없다. 중국도 당나라 시대에 크게 유행하였으나 이후에는 점차 그 수효가 줄어들게 되었고, 일본도 정창원의 유물을 통해 볼 때 나라시대에 이미 유행을 했을 것으로 보이고 에도시대를 거쳐 사용한 것은 분명하다. 2 병풍은 또한, 특히 혼례 때는 흥과 분위기를 돋우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지금도 명절 차례나 제사 때  생활공간에서 그동안 그 존재를 잊고 있던 병풍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제사 음식 뒤에 병풍은 놓이게 되고 제사가 끝나면 다시 접혀진다. 두루마리는 서구에서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들 수 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파피루스 조각이 서로 겹쳐지도록 나란히 놓은 다음 나무망치로 두드려 압착한 후, 제 수액으로 파피루스가 서로 접착되도록 하여 두루마리로 만든다. 3   두루마리의 경우는 이동이 용이한 특징을 갖는다. 둘둘 말아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옮겨지거나 가로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부채 역시 편리하게 휴대하기도 좋고 이동성이 탁월하다. 접혀져서 간단히 품에 넣고 다니기도 좋고, 햇빛을 가리거나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던 시절 더위를 식히는 소중한 생활용품이었다. 현재 더위를 식히는 기능에서 다소 벗어나 선물용이나 개인의 소장품이 되고 있다. 밥상의 경우 밥을 먹거나 책을 읽을 때 펼쳐진다. 병풍과 마찬가지로 특정 행사나 시간에 펼쳐지고 그 의식이 끝난 후에 접혀진다는 특징을 지닌다. 요즘은 각 가정에 식탁과 에어컨이 들어와서 이런 생활용품의 소중함을 잊어 버린지 오래이지만, 90년대 초반까지도 각 가정에는 식탁 대신 밥상에서 식구들이 식사를 하곤 하였다. 밥상은 제주도 지역에서 남아있는 유물들이 많다. 제주도 지역에서 남아있는 유물의 경우 겨우 국과 반찬을 올려 놓을 수 있는 면적이다. 상이 작아서 반찬도 한 두가지만 올리면 상이 좁아진다.간단한 식사가 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고,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않았던 시절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먹거리가 풍요로워진 오늘날 먹방이라는 컨텐츠에서 쉴 새 없이 식욕을 자극하는 풍부한 먹거리가 나오는 것과 대조되게 다소 초라한 밥상이라고 볼 수 있다. 밥상과 한 쌍처럼 따라 오는 것이 밥상보이다. 밥상보는 차려놓은 밥을 잠시 먹을 사람을 기다리며 덮어 놓거나 밥상이 물러갈 때 덮어 놓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실용성만 따지자면 천 조각을 아무렇게나 잘라 밥상 위에 올려 놓았다가 접어 놓아도 되겠지만 기대 이상으로 밥상보는 생활의 미를 간직하고 있다. 몇 가지 간단한 색만 배합해 모던한 감각이 발휘도기도 하고, 닭의 해를 기념하여 닭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차려 놓은 밥이 식지 않고, 먼지 따위가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했던 밥상보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몇 겹으로 접어서 공간을 최소한으로 차지하는 실용성을 내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활속에 과장되지 않게 심플한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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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사진> 한국-광복 이후, 가로 11.2cm 세로 15cm, 제주여성역사 소장.

우리의 생활 속에서 위와 같은 품목들이 접힘과 펼침의 형태로 활발하게 사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서양과 다른 동양의 고유의 시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원근법이 발달하여 하나의 소실점으로 대상을 보는 관점이 있다. 또한, 서양의 회화는 한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이나 인물에 주연과 조연을 나누는 경향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경우도 예수가 제자들보다 중앙에 위치하며 제자들보다 예수가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다. 반면에 동양의 그림에서 화조화를 보면 꽃과 식물, 동물이 어느 것 하나가 주인공이 아닌, 서로 어우러지고 상생하는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산수화의 경우 거기에는 한 가닥의 긴 길이, 산을 따라 물을 건너 그려진다. 서양화에서는 화면의 전 양상이 한눈에 나타나는 것이지만, 동양화에서는 계속해서 하나씩 나타나는 것이다. 4 서양화에서는 화면의 전 양상이 한눈에 들어 오는 경우, 중심이 결정되어 있는 반면, 두루마리 그림의 경우 가로로 시점이 이동하면서 한번에 화면을 접하지 않아, 그림의 소재를 하나 하나 따라가면서 볼 수 있다. 따라서 한 화면에 중심을 결정하지 않는 동양화의 경우 그림의 구성이나 연출도 그렇지만, 두루마리 처럼 그림을 담는 형식 역시 시점을 이동하게 하여 중심을 결정하고 있지 않다. 병풍 역시 한눈에 화면이 다 들어오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병풍을 펼칠 때 한폭 한폭 화면을 접하고 다 펼쳐졌을 때 시선이 이동하면서 한폭 한폭 살펴보게 된다. 또한 이러한 품목들이 발달한 이유는 이동이 편리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686년(신라 神文王 6)에 병풍은 일본에 금은.비단과 함께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5   이처럼 수출 또는 선물을 하거나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동이 있을 때 병풍 등은 접어서 이동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공간의 협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가옥은 대체로 왜소한 편이다. 그 이유는 첫째, 한랭의 기후로 인해 큰 방의 구조보다는 작은 방이 적합하고 둘째, 우량이 적고 광선이 풍부한 기후로 인해 곧게 뻗어 자란 나무보다는 구부러져 자란 나무가 많아 건축재로서 적합한 목재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6   한국전통건축은 기와집이던 초가집이던 흙벽이 주이고 실내가 좁고 천정이 낮은 공간을 이루고 창이 많아 항시적인 족자보다는 휴대성이 높고 크기조절이 가능한 병풍이 실용성이 높았다. 7  이처럼 건축자재와 기후로 인한 가옥의 협소한 공간의 특성상 이동이 용이 하고 접었다 펼 수 있는 형태의 것들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병풍의 경우 주로 산수와 화조가 많이 그려졌으며, <자수매화도 10폭병풍>의 경우 특이하게 매화를 크게 자수로 표현하였다. 도화서 화원이던 석연(石然) 양기훈(1843-?)이 초본을 제작하였다. 19세기 말 송암( 松庵) 8 이 그린<구운몽도8폭병풍>은 소설 구운몽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제작한 것인데. 이야기의 장면 장면을 따라 가며 보게 되어 있어, 이야기가 병풍 형식으로 그려지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채에는 장식성이 가장 탁월하게 표현된다. 부채 표면에는 서예. 화조, 산수가 가장 많이 그려졌다. 부채는 공간을 차지하는 면적이 병풍과 두루마리, 밥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접었다 피는 형태, 펴져 있는 형태로 나뉜다. 오늘날에는 캘리그라피가 그려진 부채가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현대에는 접이식의 장식성이 강한 부채는 주로 여성들이 사용하고 있다. 젊은층보다는 중년층이나 노년층에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태극부채는 광복 이후에 많이 만들어져 오늘날에 남아있다. 다른 호칭으로는 태극선, 단선(團扇) 등으로 불린다.

동시대 병풍 등을 활용한 작업을 하는 작가는 박윤영 9 이 있다. 박윤영은 산수화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는데, 대표적인 작업이 <에비앙 산수>이다. 에비앙 산수는 두루마리의 형식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에비앙 산수>는 산수화가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가에 대해 사유한다. 에비앙 생수병에 산수화가 그려진 것에 착안해 이 작업을 이루어 졌다고 말할 수 있는데, 현대에서 전통회화는 우리가 소비하는 생활용품에서 디자인적 요소를 띄며 자리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처럼 전통은 고상하고, 아취 넘치는 품격으로 우리에게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용품을 통해 손쉽고, 가볍게 소비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병풍, 두루마리, 부채, 밥상은 생활공간에서 행사, 의식, 행위, 감상 등의 목적으로 쓰여졌고, 오늘날에도 우리의 생활과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이동이 편리하고, 접히고 펼쳐지는 특징이자 장점이 있으며, 좁은 생활공간을 잘 활용한 생활의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단순히 생활용품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더하여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1. <동아 원색세계대백과사전 14>, 동아출판사, p.294.
2. 김홍남, <궁화宮畵:궁궐속의 "민화(民畵)">, 논고 <민화와 장식병풍>, 국립민속박물관, 참고.
3. 니콜 하워드, <책, 문명과 지식의 진화사-파피루스에서 e-북, 그리고 그 이후>, 플래닛미디어, p.33.
4. 킴바라 세이고, <동양의 마음과 그림>, 새문사, p.242.
5. <동아 원색세계대백과사전 14>, 동아출판사, p.294. 참고.
6. 김영학, <민화>, 대원사, p.23.
7. 김홍남, <궁화宮畵:궁궐속의 "민화(民畵)">, 논고 <민화와 장식병풍>, 국립민속박물관.
8. 송암 松蓭 박두성(1888-1963)-한글 점자點字의 창안자
9. 박윤영(1968-) -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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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_자유기고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경영을 전공하였다.
전시기획을 다루는 큐레이터에 호기심을 느끼고 진로를 정했지만, 역량 부족이다. 옛 그림을 좋아하고, 옛 그림과 현대미술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흥미롭다. 그림과 마음의 연관관계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