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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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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산수화에 나타난 은일사상 - 폐쇄와 개방의 공존

박재은_자유기고가  date. 2019.11.29

 

일반적으로 산수화에 나타난 은일의 주제는 조선중기에 많이 나타나며, 인물이 작게 표현된 대경산수인물화에서 많이 나타난다. 소경인물화에도 탁족도, 기려도등의 형태로 선비가 은일하며, 한가로운 한 때를 표현한 모습들이 대다수 존재한다. 중국의 시인 굴원( 屈原 )이 지은 <초사楚辭 >를 보면 한 어부가 창랑( 滄浪 )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냇물이 탁하면 발을 씻는다.”라고 노래했다. 이것은 세상이 깨끗하고 올바르면 나아가 벼슬을 하고, 세상이 혼란하여 어지러우면 숨어 사는 처세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고사인물화의 하나인 탁족도에서도 은일사상이 내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은거라는 개념은 19세기 이후 자의식은 높아졌으나 신분의 제한으로 좌절을 겪는 중인출신 문인들의 심경을 잘 보여주는 주제가 되어 더욱 애호되었다.2 조선시대 산수화를 보면 산속에 초가집과 그안에 작게 그린 선비가 빈번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산수화를 살펴보면, 하나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폐쇄되어있는 것 같지만 열려있는 세계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산수화에서 은일자는 자신의 은신처에서 안온하게 은거하고 있다. 이처럼 닫힌 집속에 들어앉아 있는 모습은 매우 단절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세속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몇 명의 벗들이 왕래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산수화속 은일사상의 복합적인 측면이 여기에 있다. 은일사상은 닫혀있지만 열려있는 세계라고 말해볼 수 있다. 조선 중기 김명국의 <설중귀려도>는 이러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 .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내포하는 그림이지만 이별그림으로 세상속으로 나아가는 이와 남겨진 이가 잘 대비되고 있다.  < 설중귀려도 > 는 선비가 나귀타고 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며 , 우리는 그러한 그림을 기려도라고 부른다 . 기려도는 산수화와 더불어 탈속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3 선비는 다시 세상에 나가기 위해 시종을 데리고 나귀를 타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 . 산수화에 나타난 은일의 세계관이 이 부분에서 복합적이고 유연한 사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세속과 결별한 선비는 때가 되면 세상에 나갈 채비를 한다 . 그 때문에 산수화속에는 빈번하게 세상과 연결해주는 다리가 그려져 있다 .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인 이 다리는 벗이나 처자식 , 혹은 밖에 서신을 전해줄 이가 내왕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 벗은 은둔생활에서 유일한 이 되는 존재이며 , 처자식은 식량이나 의복 , 기타 생활을 유지해줄 수 있도록 조력하는 존재이며 , 서신을 전해주는 이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는 존재이다 . 세상과의 연결 존재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세상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 정선의 퇴우이선생진적첩 4   중 < 무봉산중 > 에서 그러한 측면이 잘 나타난다 . 박자진  이 우암 송시열 5 을  찾아간 장면을 그렸다 . 표정이 잘 보이지 않더라도 무봉산과 정자 옆에 곧게 선 나무에서 우암의 고집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 < 무봉산중 > 은 송시열이 1674 년 갑인예송7 으로 말미암아 무봉산에서 은신하고 있을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8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비의 은신은 정사 ( 政社 ) 에서 자신의 세력이 밀려났을 때 필연적으로 처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해 볼 수 있다 . 대체적으로 은일은 세력을 잃은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 흥미로운 사실은 < 무봉산중 > 에서 알 수 있듯이 , 속세의 힘을 잃고도 뜻있는 벗이나 , 후학이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 말하자면 , 속세의 세력을 잃은 뜻있는 은일자의 이상을 공감하고 알아주는 이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 그러나 많은 세력 중에 알아주는 이는 극히 소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것은 김정희의 세한도9 의 유래를 보면 알 수 있다 .

한편으로 산수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탈속의 세계를 표현하는 현대 작가들의 작업도 눈에 띈다. 그것은 홍경택10의 경우처럼 폐쇄와 고립의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홍경택의 회화는 조금의 여백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공간을 채운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연필, 와인잔 등이 등장하는데, 외부세상과의 단절, 자신이 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측면에서 탈속성을 엿 볼수 있다. 홍경택처럼 자신이 애호하는 방향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주체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소암 이동식은 문화가 병리적인 경우에는 자기동일성( 自己同一性 )을 유지하기 위하여 상대적인 고립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11 라고 말한다. 탈속은 외부와의 타협이나 옳지 않은 것과 섞이고 오염되는 것을 경계하는 측면이 강하다. 탈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외부와의 고립은 병들고 오염된 세상에 중심을 잡기 위한 행동의 한 방편인 것이다.

전통산수화에 나타난 은일사상은 단순히 고립되고, 자폐적인 성격만을 내포한 것이 아니다. 은일사상은 복합적이고 유연한 사상이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거나, 자신의 이상이 세상과 통하지 않을 때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는 건강한 방식이 은일이다. 은일은 세인과 다소 떨어져 자신의 주체성을 보존하면서 세속과의 연결고리를 이어간다. 은일사상은 폐쇄와 개방이 공존하는 세계관이다. 닫힌 듯 열려있고 열려있는 듯 닫혀있는 세계이다. 또한 은신하는 때는 자신의 뜻이 세상에 펼쳐질 수 있을 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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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국 <설중귀려도>, 삼베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1. 조인수  군자의 삶, 그림으로 배우다 , 다섯수레, 2013, p. 57

2. 이수미,  산수화, 이싱향을 꿈꾸다 ,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도록, 2014, p. 157.

3. 손태호,  나를 세우는 옛 그림 , (주) 아트박스, 2012, p. 22-24  참조.

4. 퇴우이선생진적 - 보물 제 585. 1558년에 이루어진 이황의 <회암서절요서> 및 그 목록 초본이 외현손 홍유형에게 입수되었고, 뒤에 홍유형의 사위 박자진에게로 전존되었다. 1674년과 1682년 두 차례에 걸쳐 수원의 무봉산에 숨어 살던 송시열에게 가서 제발을 받았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5. 송시열   호는 우암 ( 尤庵 ), 조선후기 이조판서 ,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 -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6. 손태호, 나를 세우는 옛 그림 , () 아트북스 , 2012, p. 192. 

7. 갑인예송: 효종과 효종비가 승하했을 때 인조의 계비였던 자의대비慈懿大妃가 얼마나 오랫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전개된 두 차례의 예절 논쟁 - 손태호, 전개서, p. 191.

8. 전개서, p. 192-193 참조

9. 추사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이다. 유배 당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상적에게 추사는 고마움을 담아 세한도를 선물한

.

10.  홍경택 1968 년생 , 경원대학교 학사 , 현대미술작가 .

11.   이동식 , 현대인과 노이로제 , 한강수 , p. 19. 

 프로필이미지

박재은_자유기고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경영을 전공하였다.
전시기획을 다루는 큐레이터에 호기심을 느끼고 진로를 정했지만, 역량 부족이다. 옛 그림을 좋아하고, 옛 그림과 현대미술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흥미롭다. 그림과 마음의 연관관계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