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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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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여성성이 담긴 회화 - 민화 화조도와 정정엽의 <생산>

박재은_자유기고가  date. 2020.01.26


가회민화박물관 소장인 <화조도>는 세로로 긴 폭의 그림이다. 대략 삼단구성으로 볼 수 있는데, 맨 상단이 암수로 보이는 새 한 쌍이 지저귀고 있고, 상단부터 하단까지 석류나무와 꽃과 또 한쌍의 새가 보인다. 석류는 탐스럽게 매달려 있고, 꽃들과 석류는 빨갛고, 분홍의 화사함이 눈부시다. 맨 아래에는 괴석이 자리잡고 있다. 괴석은 가장자리를 먹으로 바림한 후 푸른색의 태점 1 을 찍어 시선을 끌고 있다. 2 태점이 마치 하나의 꽃이나 보석처럼 괴석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민화는 문인화보다 장식성이 강해 화사한 멋을 풍긴다. 때문에 문인화가 차분하고 담백한 데 비해 민화는 생기가 넘친다. <화조도>를 살펴보면 두쌍의 새들은 사랑을 노래하고, 석류는 열매 맺고, 괴석은 굳건하다. 이 옛 화조도를 풀이하자면, 남녀가 만나 사랑하여 많은 자식을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라는 뜻이다. 괴석이 영원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동양에서는 돌을 영구적인 것으로 보았다.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것. 또한 동양에서는 돌을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보았다. 동양의 정원에서는 물이 절로 흐르는 자연스러운 상태에 둔다. 그리고 이 자연이 수묵화적 자연임은 말할 나위 없다. 서양의 정원은 우선 그것을 자연에서 분리하여 인간적 형태로 바꿔놓는다. 3 영원불멸의 돌에 화려함까지 더했으니,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리라는 기복적인 그림이다. 인간의 삶이 어찌보면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잘 먹고 잘사는 것,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삶을 다할 때까지 붙들고자 하는 소망이자, 애착이다. 많은 것을 비우고 산 것처럼 느껴지는 옛 사람이라고 다를까? 남계우의 나비그림을 보고 나비의 종을 유추한 학자가 있듯이 화조화에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새, , 물고기 등이 등장한다. 화조화의 세계는 다분히 여성적이다. 암수가 함께 등장하는 것도 있지만, 주인공을 굳이 따지자면, 암놈이다. 새로운 생명이 나고 자라는 우주보편의 법칙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초상화를 비롯한 인물화에서는 여성의 자리가 거의 부재했지만, 동물과 식물로 은유되는 화조화의 세계에선 여성성이 앞선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인 <화조도> 역시 열매인 석류가 눈에 띈다. 석류나 수박 같이 씨가 많은 과일은 옛 그림에서 다산을 상징한다. 결국 인류는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없기에 자손을 남기는 사업을 존속한다. 그러한 역할의 중심이 되는 것이 여성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는 양육의 역할을 사회적인 위치가 없는 집안의 누군가가 하는 형태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자손을 양육하는 것은 어머니에게 많은 책임과 짐이 달려 있었다. 화조화에서는 이러한 여성성의 세계를 꽃들이나 지저귀는 새들로 싱그럽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동시대작가 정정엽 4 은 여성의 자궁을 빠알간 팥알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그 자체로 어떤 생명체로 느껴진다. 씨가 밭에 뿌려져 곡식이 돋아나듯이 정정엽의 생산은 수많은 씨가 자궁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할 것을 예고 한다. 제목이 <생산>이다. 여성에게 지워진 생산이라는 의무가 여성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 많았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할 때는 태어난 아이가 여아일 경우 존재하는 차별들과 그로 인해 굴러가는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여성도 아이도 자유롭지 못했다. 여성은 사춘기부터 생산에 적합하게 몸이 성장한다. 이러한 성장을 때론 수줍게 때론 거추장스럽게 여겼다. 자궁이 갖는 의미는 인간에게는 남다르다. 태어나기 이전에 고향이기도 하며, 어머니와의 완전한 결합이다. 태교를 위해 여러 서적을 뒤지며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어머니의 감정을 영민하게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태아 자신을 환영하는지, 사랑하는지 조차도... 인류 존속의 사업은 여성에게 달려 있다. 정정엽의 회화는 여성성의 본질과 여성이 하고 있는 수 많은 역할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감히 말해 본다. 신은 여성이며, 여성에게 인류에 미래가 달려 있다고...


민화 화조도[꾸미기]ds.jpg

<화조도(花鳥圖)> 비단에 채색, 88*34cm,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1. 태점 수묵화에서 산, 바위, 땅에 난 이끼를 나타내기 위해 찍는 작은 점이다. - 윤열수, 서민의 삶과 꿈, 그림으로 만나다 , 다섯수레, p. 49

2. 윤열수, 서민의 삶과 꿈, 그림으로 만나다 , 다섯수레, p. 49.

3. 킴바라세이고 동양의 마음과 그림 , 새문사, p. 152.

4. 정정엽(1961-) - 이화여대 졸업,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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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_자유기고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경영을 전공하였다.
전시기획을 다루는 큐레이터에 호기심을 느끼고 진로를 정했지만, 역량 부족이다. 옛 그림을 좋아하고, 옛 그림과 현대미술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흥미롭다. 그림과 마음의 연관관계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