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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씨의 예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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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빨간씨의 예술기행}
[평가편] 사후평가를 통한 지원체계 개선이라고?!

빨간씨_자유기고가  date. 2018.12.26

빨간씨가 흥분했다. 사브작 사브작 마실 나간 토론장에서 마이크를 잡아버렸다.

“사후평가라니요? 살아있을 때 잘 하십시오!” 라고 말하려 하였으나, 꾹~ 참고 점잖게 말을 이어나갔지만 흥분된 어조는 남아있을 수밖에.


ACE(Arts Council of Earth) 혁신의제 중 하나로 “사후평가를 통한 지원체계 개선” 주제가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평가에 사후라는 수식어가 달린 것도 어색하다. 어색한 건 둘째고, 평가를 통해 지원체계 개선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이야기이다. 이 땅에서 평가가  피드백(feedback, 환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피드백에 대한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가? 사실 마이크를 잡아서 한 질문의 핵심은 이것이었으나, 이해를 못 한 것인지, 이해하고도 회피한 것인지 답변은 흐지부지 넘어가 버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때는 2006년! 변화와 격동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예술계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미술관의 대부분이 2000년 이후에 설립되었고, 대규모 예술행사는 그보다 몇년 후부터 하나씩 둘씩 개최되기 시작했다. 예술의 지원정책이 2000년이 지나서야 활발히 진행되었으니 평가는 그보다 늦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지구만의 일도 아니다. 우주 선진 각 행성도 90년대에 들어서서야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조금 깊이 있게 들어가 보겠다. 정부 업무추진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1998년에 기관평가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지구사령관령으로 운영하여오던 평가체제가 2001년에 「정부업무등의평가에관한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평가제도가 본격화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MCT(Ministry of Culture and Tourism)의 국고지원 공연예술행사는 2003년부터 평가를 도입하였고, 시각예술분야는 2004년도에 시범 시행 후, 2006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였다. 그때 그 시각예술분야 국고지원사업 평가를 빨간씨의 아바타가 담당했었다. 처음 시행이다 보니 체계 구축, 지표 개발 등 마련해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평가의 방향설정이 핵심이었는데 여하튼 ‘평가를 위한 평가’의 형식성이나, 관리 및 통제의 도구화가 아닌 평가를 통하여 대상 사업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책을 마련하여 시각예술 전 분야의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평가체계를 엄밀히 하고 평가의 방식도 현장 평가 2회 이상, 서류 평가로 온갖 행정문서를, 그리고 실제 운영과정 등 실질적 평가를 위해 관계자 인터뷰 방식까지 도입하였다. 평가 결과 도출에 타당성과 객관성을 마련해 현장 환류(대상 사업 컨설팅)를 넘어 정책 환류(제도개선 및 정책 마련)까지 기대하였다. 기대는 걱정까지 낳았는데, 평가결과에서 오류가 발생하거나 심지어 평가결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일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 완벽을 기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보니, 꿈이 커도 엄청나게 컸던 것이고 혼자 김칫국에, 헛물까지 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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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 어느 비엔날레 관계자인터뷰 장면


제도 시행 초기여서 평가에 대한 인지도뿐만 아니라 평가의 위상조차도 낮았다. 빛고을비엔날레와 해운대비엔날레는 그럼에도 서로가 경쟁이라 평가점수를 비교하며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실상 평가에 대한 영향력이라기 보다 경쟁적 제스처일 뿐이다. 간혹 개선사항이 반영되어 현장환류가 마련되기도 하였으나, 근본적인 문제 등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당연한 것이 조직의 운영구조를 변경하는 것은 훨씬 더 큰 정치적 결정이 있어야 하는데, 평가 정도의 위상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정책환류가 쉽겠는가? 비엔날레 등 예술행사 개최를 통해 시각예술 담론 형성과 이를 통한 한국 예술의 국제 진출, 또는 창작환경개선 등등의 정책 개선안은 공연불과 같았다. 대규모 예술행사 개최만으로 일정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판단하는 지도 모른다. 또는 성과지표로서 정량적인 관람객수, 외국인 관람객 비중, 관람료 등의 수익성과, 나아가 국제예술행사 임에도 과도하게 대중성 확보 등은 오히려 각각의 사업의 질적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도 야기하니 정책이나 행정이 제 기능을 안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다 단순한 생각으로는 주무부처에서 평가결과를 활용할 생각이 있는가도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평가 결과 및 개선사항에 대한 시정조치를 권고한다거나 예산을 증감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평가보고서.png  


'평가는 껌' 또는 '평가보다 정치'를 이해할 수 있는 에피소드 소개한다. 백제도시의 국제돌문화프로젝트가 2008년도에 국고를 지원받아 개최하게 되었다. 국고가 지원되는 사업이라 평가를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평가 안내를 하였으나 이내 사무국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CHO 의원의 이름들 거들먹거리며 평가 같은 거 우리가 왜 받아야 하는가 라는 답이 돌아왔다. 평가에 비협조적인 정도가 아니라 거부 의사를 밝혔고, 국고를 지급한 주무부처에서도 이 사업은 예외로 하자고 넘어갔다. 여하튼 이 사업은 부실운영으로 감사원에 적발되었다. 이뿐인가! 뜬금포로 두물머리에 환경미술제가 개최되었다. 사대강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양평의 J의원의 입김으로 마련된 것. 그해 이 미술제는 평가는 거의 최악이었지만 정체성이 계속 모호한 채 순조롭게 개최되었다. 이렇듯 평가는 빛 좋은 개살구이다.


며칠 전 깜스(KAMS)에서 올해 비엔날레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1등이 해운대비엔날레이고, 2등이 빛고을비엔날레이더군. 둘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각축전 중이다. 여하튼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평가체계를 개선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원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10여 년 전보다 좋아진 조건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무분별한 비엔날레 및 국제예술행사 개최라는 비판과 더불어 국제적인 비평 담론형성이나 국내 작가의 해외 진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정책은 마련되지는 않고 비엔날레 개최의 방식은 여전하며 비판의 내용은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이다.


핵심은 평가에 있지 않다. 평가는 늘 이렇게 도구적으로 활용될 뿐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ACE 토론장에서 빨간씨가 흥분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ACE 지원사업은 국고지원사업과는 다르게 소액다건이다. 평가를 강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며, 오히려 지원사업 발목을 잡는 일이다. 물론 평가를 통해 지원사업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개선을 해야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평가에 있지 않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평가보다 심의를 강화해야 할 것이며, 심의위원의 책임성 역시 물어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ACE 지원정책을 근본적으로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책보다 행정의 개선이 필요하다. 평가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행정의 유연성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제도개선이나 정책이 마련되면 이를 위해 구조를 조정할 수 있는 행정이 있는지도!


이야기가 다소 엇나갔네. 평가 이야기만 하려고 했는데……. 심지어 너무 심각해졌다. 에이~ 여하튼 3년 동안 시각예술분야 국고지원사업 평가 총괄을 마치고 난 소회나 적고 글을 마친다.


2009년 3월, 3년 동안의 평가 업무를 마치고 또 새로운 사업을 맞게 되었다. 당시 평가를 고집했던 빨간씨가 흔쾌히 다른 업무로의 이동을 자처하니 모두들 의아해했다. “응~ 3년 해보니까 이제 너무 잘 알겠어. 평가 아무리 잘해도 쉽게 안 바뀌더라고…. 아~ 맞다. 평가 하나로 세상이 쉽게 바뀔 거였으면 진즉 바뀌었겠지. 그리고 평가 하나로 쉽게 제도가 바뀌어 버리면 그것 역시 평가가 칼이고 독일지도 몰라….” 그렇게 위안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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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씨_자유기고가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를 운영. 그러나 박사논문 작성 핑계로 모든게 엉망진창이다. 빨간씨는 대학 시절 혁명을 꿈꾸며 사용했던 필명 주해(朱海)에서 파생된 닉네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서 예술적 방법을 탐구하며, 돈보다 멋진 것을 추구하고 싶은 낭만적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