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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씨의 예술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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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빨간씨의 예술기행}
경기불황과 '잉여인간'

빨간씨_자유기고가  date. 2019.03.26

박사논문 작성으로 원고료 주는 글은 쓰지 않겠다는 말도 안 되는 한시적 절필선언을 하고 [우주마가린]에만 매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나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좨~ 동원해 봐도 별 수가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예전에 썼던 글들을 소환해본다. 


몇 년 전부터 정부나 여러 공공기관에서 밀어붙이는 ‘예술과 기업의 융합’인지 ‘동거’인지, 그 불편한 주제가 이슈이다. 한편 작년 하반기 예술계에는 일대 파란이 일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추진하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있었고, 예술과 예술가에게 낭만적 희망을 지녔던 많은 이들이 큰 낙담을 하였다. 여하튼 이 사태로 이 일을 담당하고 있던 한 청년은 쓰러져 아직도 병중에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예술과 예술가들에게 큰 기대와 희망을 지니고 있더라. 나 역시 그와 같이 함께 웃으며 함께 기대를 한다. 아니 그이가 웃어주니 나 그 기대를 더더욱 버리지 못한다. 생각해보라.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기대하고 꿈꾸던 예술 아니던가? 


예술에 대한 낭만적 희망을 버리라는 가까운 예술가들이 있다. 그이의 말의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난 예술과 노동에 대해, 우리 사회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쓴다. 해서 관련한 글들을 연속해서 게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2015년 5월에 발간된 『컨템포러리아트저널』 1) 에 기고한 「경기불황과 ‘잉여인간’」을 게재한다. 꽤 오래된 글이기도 해서 몇몇의 문장들은 그 시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후후~ 변명도 참 길다. 


문화는 불황의 사회를 어떻게 말하는가?

「경기불황과 ‘잉여인간’」


최창희_감성정책연구소장


불황과 20대의 정체성

『88만원 세대』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저자 우석훈은 2014년 하반기에 『불황 10년』을 출간하였다. 또한 어느 경제 관련 실용서의 부제는 “불황 10년, 가정부터 지켜라”라 이기도 한데, 이렇듯 요즘의 시기를 알려주듯 출간되는 경제관련 지침서는 투자보다 불황에 대한 대비책에 대한 것들이다. 이미 일본은 장기불황이라고 언급된 지 오래이며, 세계 경제 역시도 경기회복보다는 침체와 위기 등의 말을 더 많이 쏟아놓고 있다.  


세계 각국은 임금인상을 통한 내수증진 등 소득주도 정책을 통해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상당히 보수적인 정부로 평가받는 현 정부에서도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재계에 임금인상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며, 나아가 청년일자리 해결책으로 ‘제2의 중동붐’을 언급하며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많은 중동으로 가라고 언급하여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기불황은 청년 일자리 문제에 연관될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정체성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불황이 장기화된 일본에서는 10대~20대의 소비지양의 젊은이들을 ‘사토리 세대’라고 일컫는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태어나 소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버블경제 붕괴 후 닥친 장기불황 시기) 속에서 성장한 이 ‘사토리 세대’는 돈벌이는 물론 출세에도 관심 없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며, ‘깨달음, 득도’라는 사토리의 의미처럼 소비를 혐오하고 욕망을 억제한다. 좀 다른 양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의 성향에 따라 그들을 지시하는 신조어가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88만원세대’ 2) 이며, 또한 2011년에 경향신문에서 처음 사용된 신조어로서 ‘삼포세대’도 젊은이들의 정체성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88만원 세대’와 ‘잉여인간’ 그리고 그들의 문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보자. ‘88만원 세대’, ‘삼포세대’와 같이 젊은이들을 일컫는 표현들이 등장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90년대에는 ‘신세대’, ‘X세대’ 등이 있었으며, 2000년대에는 ‘N세대’ 등이 존재했다. 이러한 20대를 지시하는 표현들이 전자와 후자의 양상이 다소 다른데, 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세대’, ‘X세대’ ‘N세대’ 등은 보다 그들의 개인적인 성향들과 문화적 특성을 주목한 반면, 최근의 것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환경이 주된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88만원 세대’의 88만원은 20대의 비정규직 평균급여로서 이들의 경제적, 사회적 능력과 위상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것이다. 또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였다하여 일컫는 ‘삼포세대’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잉여인간’이라고 부르는 세대들이 등장하였고, 이와는 상반되게 인터넷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일베’ 3) 라는 보수 성향의 그룹들이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나머지, 불필요 등의 부정적인 의미의 ‘잉여인간’을 자칭하는 청년들과 이러한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연구와 저서들 4) 도 있으며 이들을 소재로 하는 영화와 연극도 세상에 등장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스물>이 그것 중 하나인데 극중 김우빈이 분한 ‘인기만 많은 놈’으로서 치호 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잉여의 삶을 지향하는 인물이다. 코미디 대중영화의 한 소재로서 ‘잉여’를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2014년 12월에 막을 올렸던 연극 <위대한 생활의 모험> 5) 은 같으면서도 다른 ‘잉여’와 20대를 다룬다. 여기서 주인공 남자는 헤어진 전 여자친구의 집에서 그야말로 빌붙어 살면서 게임 외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인물이다. 이와는 다르게 여자 주인공은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은 조그만 단칸방에 미래도 불투명한 전 남자친구를 내쫓지도 못하고 같이 살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들의 일상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이 연극은 아무 희망도 없을 것 같은 무능력하기만한 남자의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마지막 대사가 이상하게도 위안을 준다는 것이 독특한 지점이다. 아마도 이는 이러한 현실에 이렇다 할 대안도 없지만 무조건 열심히 사는 것도 역시 답이 아님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리라. 


보다 직접적으로 ‘잉여인간’을 다룬 영화도 있다. ‘잉여들의 격투기’라는 의미의 영화 <잉투기>는 ‘ing+투기=우리는 지금 싸우는 중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잉여’라고 불리우는 이 시대의 청춘들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잉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실제 잉여 4인방의 유럽여행기를 영화로 만든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이전의 잉여에 대한 직·간접적인 묘사와 다르게 직접 잉여인간들이 만든 것이며, 그리고 잉여에 대한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영화이다. 이것과 유사한 영화로 <파티51>이 있는데 이 역시 “잉여력 충만한 홍대 언저리 뮤지션들”의 자본과 경쟁에 맞선 스스로 자립하기 위한 실험을 보여준 영화이다. 두 영화 모두 다큐멘터리로 구분되는 것으로서 잉여인간임을 자청하는 그들의 삶 자체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며, 나아가 ‘잉여’라는 것에 새로운 의미를 제공해준다.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수포로 돌아가고 그나마 조금 모아둔 돈으로 유럽여행을 계획하다가 시작한 ‘유럽에서 1년 버티기’인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나 공연장도 돈도 없는 홍대 언저리 뮤지션들이 ‘작은 용산’이라고 불리 우는 두리반을 시작으로 주민잔치, 대학축제, 집회시위현장, 길거리 등에서 공연하는 <파티51>을 통해서 ‘잉여’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다시 말해 이들이 정말 ‘잉여인간’인가? 그렇다면 ‘잉여’란 무엇이지? 라는 의문이 저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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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연극 < 위대한 생활의 모험 >, 영화 <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 영화 < 파티 51> 공식포스터



잉여의 미학과 정치경제학

나머지, 잔여물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서 ‘잉여’를 자신들의 수식어로 내놓는 이들은 현대사회의 경쟁에서 도태하고 낙오된 자들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지점은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를 자청하며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를 즐긴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잉여’의 의미를 ‘잉여가치’와 연관하여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잉여가치’는 자본이 자기증식하여 생겨난 것으로 기업의 이윤이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대표되는 정치경제학에서는 노동력과 생산력은 같아야하는 것인데, 이윤이라고 하는 ‘잉여가치’가 생성되는 것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에 의한 것으로서 노동의 초과분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잉여와 잉여가치를 연관하여 설명하고자한 의도는 노동에 대한 의미를 주목해 보기 위해서이다. 신자유주의의 자유시장 논리는 무한경쟁이라는 시스템을 도입시켰으며, 이러한 무한경쟁을 통해 많은 낙오자들을 배출시켰다. 경쟁의 승리자들은 낙오자들을 무시하고 경멸하겠지만 오히려 낙오자들은 스스로를 잉여라 여기며 나아가 이를 즐긴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가의 이윤으로 대표되고, 노동의 착취로 이해되는 잉여의 개념이 경쟁의 낙오자, 시대의 루저들에 의해 오히려 그 개념이 차용되고, 혁명적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과도한 경쟁을 요구하고 초과노동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 초과된 잉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가치의 전복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삶은 예술가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이러한 과정은 잉여의 개념뿐만이 아니라 노동의 의미까지 되새이게 한다. 본래 노동은 가치의 실체이며, 노동하는 것은 곧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자본주의사회에 신자유주의까지 도입되면서 노동의 의미는 변색되고 왜곡되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예술하는 행위처럼 잉여인간들의 잉여적 삶의 태도는 노동과 잉여, 노동과 유희의 개념을 상기시키고 그 둘의 경계를 흐릿하게 한다. 예술가의 예술하는 과정은 유희이자 노동이기 때문이고, 잉여인간의 잉여 행위는 유희이자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6) 따라서 예술가들이 유희하는 것과 같이 잉여인간들은 본래 노동의 의미를 되살려 노동과 유희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삶에서의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로 서는 계기가 된다. 


모든 잉여적 행위와 모든 ‘잉여인간’을 가능성의 대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동일한 사회와 같은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임에도 이것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오히려 이러한 체제를 비판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동일한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나 사회를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극적으로 다른 것이 ‘잉여인간’과 ‘일베’이다. 


‘잉여’를 주목하는 몇몇의 연구와 저술들 속에서도 역시 현대사회의 무한경쟁 시스템인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잉여’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일맥상통한 부분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잉여와 예술은 닮아 있는데, 현대사회에서 많은 부분 예술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의 잔재로 쇄락한 도시에 예술을 통한 새로운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커뮤니티예술과 창작공간 등이 그것인데 이 또한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가 존재한다. 예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넘어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의 발생과 함께 새로운 자본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과 예술과의 융합으로 제시되는 ‘창조경제’는 그야말로 문화를 통한 새로운 산업을 계획하는 것으로서 예술을 도구화하고 있다. 또한 예술과의 융합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경제를 외치면서 대학에서는 취업률이 낮은 인문학과 예술분야를 폐과시키는 것은 모순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대목에서 불황, 나아가 경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불황과 경기회복에 대한 대안으로, 나아가 새로운 경제정책으로 문화와 예술을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가지고 있는 아방가르드 정신, 기존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도전 등에서 진정한 답을 찾아야한다. 


영화와 연극, 그리고 몇몇의 사례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잉여인간’들의 ‘잉여력 돋음’은 현대사회에 순응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만하다. 또한 기존 가치에 대해 저항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예술가들을 주목해보아야 한다. 잉여인간과 예술가들은 소위 잘나가는 직장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 기준으로 삶을 영위하고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주

1) 책정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684460 

2)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2007년 전후 한국의 20대를 지칭하는 말로서 비정규직 평균 급여 119만원에 20대 평균급여에 해당하는 73%를 곱한 금액이 88만원이다. 이 말은 2007년 8월 출간된 책 『88만원 세대』(우석훈, 박권일 저, 레디앙, 2007)에서 처음 쓰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3) ‘일베’는 일베저장소(일간베스트저장소)의 약칭으로서, 보수성향의 유머, 풍자, 정치 관련 사이트이자 인터넷 커뮤니티이다. 일베는 특정지역과 전 노무현대통령을 비하하는 등의 행동과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롱하는 행위들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일베는 현대사회에 대한 대안도 되지 못하는 진보행동에 대한 강한 적대감으로 편향된 보수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사회에 대한 가치판단기준이 왜곡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4) 이러한 책으로는 『잉여사회』(최태섭 저, 웅진지식하우스, 2013) 등이 있으며, 한국사회의 속물성과 잉여문화를 분석하는 논물 모음집인 『속물과 잉여』(김수환, 김상민, 김홍중, 백욱인, 서동진 저, 지식공작소, 2013)도 출간되었다.

5) 2014년 12월 2일부터 사흘 동안 대학로의 키작은소나무극장에서 상연한 연극 <위대한 생활의 모험>은 일본 도쿄 출생의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마에다 시로의 희곡이 원작이다. 이 극의 제목에 따라 젊은 연극인들이 모여 ‘위대한모험 프로젝트’라는 공연단체를 만들고 첫 작품으로 <위대한 생활의 모험>을 상연했다. 

6) 예술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예술과 기술, 예술과 노동이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예술이라는 ‘art’의 어원인 라틴어 ‘ars’는 ‘조립하다’, ‘고안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 라틴어는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ē)’의 번역어이다. 즉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라는 말이 지금의 예술이라는 art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어의 ‘테크네’는 그 어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technique’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즉 예술의 어원인 ‘테크네’는 예술과 기술의 의미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테크네’는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작업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필요를 위한 기술’과 ‘기분전환과 쾌락을 위한 기술’로 구분하였는데, 전자는 실용적인 여러 기술을  후자는 예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의 어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 예술은 노동과 같은 의미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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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씨_자유기고가

'문화예술공동체를 위한 감성정책연구소'를 운영. 그러나 박사논문 작성 핑계로 모든게 엉망진창이다. 빨간씨는 대학 시절 혁명을 꿈꾸며 사용했던 필명 주해(朱海)에서 파생된 닉네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서 예술적 방법을 탐구하며, 돈보다 멋진 것을 추구하고 싶은 낭만적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