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와 재미 반 병, 칼럼 다섯 큰술, 리뷰 다섯 큰술, 제언 두 방울
화조화의 세계는 다분히 여성적이다. 암수가 함께 등장하는 것도 있지만, 주인공을 굳이 따지자면, 암놈이다. 새로운 생명이 나고 자라는 우주보편의 법칙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초상화를 비롯한 인물화에서는 여성의 자리가 거의 부재했지만, 동물과 식물로 은유되는 화조화의 세계에선 여성성이 앞선다.
미인도의 계보는 대체로 신윤복의 부터 시작되어 채용신의 , , 김은호, 김기창, 장우성, 박노수의 여인상들이 있다. 이중 채용신의 은 다소 드문 그림으로, 그 역사적 배경을 보면 烈女의 이미지가 강하다.
조선시대 산수화를 보면 산속에 초가집과 그안에 작게 그린 선비가 빈번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산수화를 살펴보면, 하나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폐쇄되어있는 것 같지만 열려있는 세계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대미술에서도 여전히 전통은 유효한 코드로 읽히고 변용된다. 그것은 퓨전동양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동양화의 새로운 흐름의 하나로 해석되기도 한다. 주로 팝아트에 동양적 요소를 끌어들여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을 변용한 작업은 크게 전통을 비틀고 전복하는 작업과 전통에서 유효한 가치를 자신의 작업에 녹여 작업하는 작가로 분류된다고 할 수 있다.
전통회화는 유난히 안락하고 편안한 느낌을 동반한 경우가 많은데, 특히 안락한 느낌을 내포하는 전통회화는 화조화라고 볼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화조화는 일상에서 접하는 동물이나 식물을 따듯한 시선으로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다. 화조화는 일상의 평온한 순간, 나른한 오후에 낮잠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약간의 느슨한 일상의 순간을 포작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안성민의 산수는 독특하다. 전통시대 산수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자연을 관조하는 선인들을 표현한 것이라면 안성민의 산수는 보다 현실과 맞닿아 있다. 산수에 내재된 고매하고, 고차원적인 정신성에서 국수라는 다소 이질적인 화면으로 본래의 산수화를 전복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조선에 체류했던 미국인 선교사 그리피스는 조선에 은자의 나라라는 표현을 붙였다. 조선이 동아시아에 밀려든 근대화의 물결에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은자의 나라라는 표현은 미국의 입장에서 개항의 물결에 완고히 저항하는 조선의 은둔적이고 자폐적인 속성을 빗대어 나타낸 말이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것으로부터의 저항은 주체를 지키기 위한 몸짓이며, 정신성으로 풀이될 수 있다.